▲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문화 행사 참석한 조성길 北 대사대리
[김민호 기자] 청와대는 7일 조성길 전 주(駐)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한국 거주 사실이 뒤늦게 공개된 것에 대해 공식 입장을 자제하면서도 향후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은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22년만의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한국 망명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북한의 대사급 외교관 망명 사례로는 처음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북한의 남측 공무원 총격 피살 사건이 벌어진지 얼마 안된 시점에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 사실이 드러나면서 남북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했던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국내로 입국해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정보위 야당 간사가 공개적으로 확인하면서 정치권 이슈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국가정보원 등 관계 정보당국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지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 전 대사대리는 임기 만료를 앞둔 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내와 함께 잠적하면서 한국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2011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북한 대사급 외교관의 망명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2년 전인 2016년 당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태 의원이 한국으로 망명하기는 했지만 조 전 대사대리의 경우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 대남비서 이후 북한 최고위급의 한국행이라는 평가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이 7일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북한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에 대해 “딸을 북에 두고 온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 언론이 집중조명과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고 우려를 전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잠적 이후 북한에 송환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딸의 신변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조성길과의 오랜 정을 생각해서 그를 우리 대한민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었다”며 “그러나 조성길이 북한 대사관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의 딸을 데려오지 못했고, 북한은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즉시 대사관 직원을 시켜 그의 딸을 평양으로 강제로 귀환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조성길의 한국행을 계속 주장하며 활동을 하게 되면 조성길은 물론 북으로 끌려간 딸에게도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충고를 받았다”며 “언론사들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도하지만, 북한에 친혈육과 자식을 두고 온 북한 외교관들에게 본인들의 소식 공개는 그 혈육과 자식의 운명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인도적 사안이다.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대우나 처벌 수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도주자, 이탈자로 분류된 탈북 외교관들의 북한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불이익 중 가장 가혹한 처벌은 지방으로의 추방”이라며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등의 극단적인 처벌은 하지 않지만 변절자, 배신자의 가족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전직 북한 외교관들은 북에 두고 온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조용한 삶을 이어가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조 전 대사대리)와 20년지기”라면서도 “소재와 소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태 의원은 오는 국정감사에서도 조 전 대사대리 관련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태 의원과 조 전 대사대리는 평양외국어학원 동문으로 북한 외무성에서 함께 근무한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와대 역시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날 저녁 언론보도 이후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관계 부처와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내 여론과 북한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피는 분위기다. 북한 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에 대한 야당의 공세로 국내 여론이 안 좋은 상황 속에 민감한 문제가 불거지자 향후 파장의 확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대외적으로 확인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모든 부처에 이러한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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