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읽다가 어떤 새로운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새로움은 기실 새롭다고 할 수 없겠지만 마치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는 것과 닮았다. 우리는 그 세계에서 한 뼘 더 자란 생각과 만나고 책을 만나고 저자를 만난다. 그들은 모두 구면이지만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반갑다. 오랜만에 만난 <위대한 왕>이 그랬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책 표지에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이라고 쓰여 있다.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자꾸 마지막 장을 넘겨보았다.

광대한 만주 밀림에 대한 묘사도, 인간과 호랑이의 대립도 천편일률적으로만 느껴졌다. 마지막 호랑이의 죽음은 유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비애감이 나를 감싸고 있다. 광대한 만주 밀림의 대자연은 그 섭리에 따라 계절을 지난다. 동물들은 지겹도록 계절을 반복한다. 그 지루해 보이는 삶은 모두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한국 호랑이는 고고하고 위엄 있게 살아간다. 하지만 만주 밀림을 개발하려는 인간들의 침입은 호랑이의 고향을 빼앗는다. 그곳은 호랑이의 추억이자 삶 자체이다. 마침내 호랑이는 마지막 싸움을 하고 산꼭대기 절벽 위에서 숲의 바다를 굽어보며 눈을 감는다.

책의 가치를 뒤늦게 알아본 데 대한 변명을 하자면, 과거의 나는 만주 밀림을 개발하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간들을 위해서 자연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발문에서 서경식 교수는 일본에서 이 책의 인기를 언급하며 일본의 만주침략 합리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일본인들처럼 호랑이의 죽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떨까. 대답 대신 소설 끝에 '자연은 굴종하지 않는다'란 문장을 말하고 싶다.

호랑이에게 잡혀먹히는 어떤 동물들도 쉽게 그들의 목숨을 내놓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끝까지 싸웠고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호랑이도 최선을 다해 사냥을 하고 그 이상의 몫은 욕심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우리는 너무 쉽게 굴종하고 또 굴종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가 굴종하는 것 또는 우리가 굴종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만주 밀림의 왕으로 군림했던 '위대한 왕'이 쓸쓸히 죽어갔던 것처럼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그렇게 죽는다. 지금 인간의 삶은 자연의 섭리와 너무나 동떨어져 버린 느낌이다.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처럼.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