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상속녀로 신분을 세탁해 뉴욕 사교계를 흔들었던 애나 소로킨이 2019년 5월 22일(현지시간) 뉴욕 고등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정재원 기자] 미국 뉴욕에서 유력 가문의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 놨던 여성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사기 대출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 11일(현지시간) 가석방으로 풀려났는데 자신의 스토리를 방송·출판사에 팔아 수 억 원대의 판권 수입을 얻은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러시아 태생으로 패션지 인턴 출신인 '가짜 상속녀'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애나 소로킨. 현실판 '리플리'로 불리는 그는 올해 서른 살이다. 
 
소로킨은 지난 2013년 '애나 델비'라는 가명으로 뉴욕 사교계에 등장해 패션과 예술계 인사들을 사로잡으며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 있는 개인)가 됐다. 소로킨은 2013년 '애나 델비'라는 가명으로 뉴욕 사교계에 등장해 패션·예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으며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 있는 개인)가 됐다. 동유럽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스스로를 '독일계 백만장자의 상속녀'라고 소개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물 쓰듯이 돈을 써대는 그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로킨은 맨해튼 고급 호텔에서 숙식하면서 호화 레스토랑과 명품숍을 전전했다. 화려한 삶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로킨의 실상은 상속녀와 거리가 멀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출생인 그는 16세 때인 2007년 부모를 따라 독일로 이민 갔다. 러시아에서 트럭 운전을 하다가 독일에서 소규모 냉난방 사업을 하는 소로킨의 아버지에겐 그녀에게 상속해 줄 재산 따위는 없었다. 소로킨은 런던에서 패션스쿨을 다니다 중퇴하고 파리의 패션 잡지사 '퍼플' 인턴으로 취업하면서 잡지에 나오는 화려한 삶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애나 델비'라는 가명을 만든 것도 그 무렵이다.
 
소로킨은 뉴욕으로 오면서 상속녀로 둔갑해 본격적 사기 행각을 시작했다. 뉴욕포스트에 의하면, 그는 사업을 하겠다며 대출 서류를 위조해 금융회사에서 모두 20만 달러(약 2억3,400만 원) 넘는 돈을 대출받았다. 호텔에선 100달러 지폐를 팁으로 뿌렸다. 돈이 떨어지면 사교계 지인들에게 "지금 독일 은행에서 바로 이체가 안 되는데, 나중에 입금해 줄 테니 돈 좀 빌려줘"라는 식으로 사기를 쳤다.
 
소로킨의 가짜 상속녀 행세는 2017년 10월 사기 행각이 발각돼 체포되면서 4년여 만에 끝이 났다. 최근 그는 법정에 나올 때도 할리우드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이브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 의상을 입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 미국의 패션 잡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의 저서 '내 친구 애나'의 표지 사진. 윌리엄스는 배니티 페어에 뉴욕 사교계의 사기꾼 '애나 소로킨'의 이야기를 기고하며 그를 대중에 알렸다. (사진=출판사 갤러리북 제공) 2019.05.01
소로킨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작년 8월 패션지 '배니티 페어'의 편집자 레이철 윌리엄스의 기고문을 통해서였다. 그는 기고문에서 "애나는 구치 샌들과 셀린 선글라스를 끼고 내 인생에 들어왔다. 맨해튼 고급 호텔에서 생활하고,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며, 모로코의 호화 휴가 등 한 치의 오점 없는 세계를 내게 보여줬다. 그러다 내 돈 6만2,000달러(약 7,200만 원)를 들고 사라졌다"고 썼다. 실제로 소로킨은 윌리엄스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비용을 대겠다며 개인 비행기와 모로코 고급 호텔 예약을 한 뒤 결제할 때가 되자 "신용카드가 안 되는데, 대신 내 주면 나중에 입금하겠다"고 한 뒤 잠적했다.
 
결국 소로킨은 2019년 5월 다수의 절도 혐의와 위조 서류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에서 최대 12년을 선고받고 2만 4,000달러의 벌금과 20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배상금을 부과받았다.
 
소로킨은 재판 과정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기극을 벌일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명품 의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하면서다. 죄를 뉘우치지도 않았다. 주변인들이 멋대로 자신을 백만장자로 여겼을 뿐 자신이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중요한 건 미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죄책감을 갖는다면 나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게 된다” 는 그의 법정 진술 역시 눈길을 끌었다. 또 넷플릭스는 영화와 드라마 소재로 어울리는 소로킨의 가짜 인생에 주목해 1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결국 소로킨은 지난 2019년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러다 지난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후회한다고 태도를 바꿨다. 
 
한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소로킨이 자신의 스토리를 넷플릭스에 팔고 32만 달러(약 3억 6,000만 원)를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그가 이 돈을 가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법원이 소로킨에 대해 ‘선 오브 샘’ 법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범죄자가 범죄로 얻은 유명세를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한 법률로, 현지 언론들은 2001년 이후 이 법이 적용된 사례는 소로킨이 처음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