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 전사들이 지난 1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순찰하고 있다.
[정재원 기자]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점령 이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아프간 수도 카불 북부에 위치한 판지시르주(州)를 거점으로 결성된 탈레반 저항군이 탈레반 장악 지역을 탈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21일 아프간 정부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탈레반 저항군이 아프간 북부 3주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은 총 34개 주로 이뤄졌는데, 저항군이 이번에 탈환한 곳은 북부 바글란주와 파르완주다.
 
파르완주는 수도 카불과 북쪽으로 맞닿아있으며, 바글란주는 카불에서 북쪽으로 120㎞ 떨어진 지역이다. 두 곳 모두 판지시르주 서쪽 지역과 연결된다.
 
VOA에 따르면 압둘 하미드 저항군 지휘관은 공개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 과정에서 탈레반 전사 최소 1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며 "저항군이 인근 지역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은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해외 도주로 자신이 임시 대통령임을 자임한 지 며칠만에 이뤄졌다.
 
살레 부통령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탈레반에 대한 저항의 뜻을 밝히며 결집을 독려했다. 트위터에는 판지시르주에 저항군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이 운집한 영상도 공개됐다.
 
이들 중에는 살레 부통령과 비스밀라 모함마디 아프간 국방장관 대행,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가 포함됐다.
 
판지시르주는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음에도 유일하게 장악되지 않았던 지역이다. 이곳은 아프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 속칭 '북부동맹'의 근거지다.
 
북부동맹을 이끌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소련 침공과 탈레반 장악에 저항 의지를 표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인 마수드는 워싱턴 포스트(WP)를 통해 탈레반과 싸울 무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오늘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준비가 된 무자히딘 전사들과 함께 판지시르 계곡에서 다시 한 번 탈레반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며 "탈레반은 아프간 국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탈레반 통제 하에 아프간은 틀림없이 이슬람 과격 테러의 시초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음모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부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2일(현지시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알아라비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소련에 맞섰고, 탈레반에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프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탈레반을 용서할 준비가 됐다"며 탈레반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촉구했다. 또 만약 탈레반이 대화를 거부할 경우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저항군이 탈환한 지역들이 수도 카불과 인접한 지역이라 탈레반도 방어를 게을리할 수 없다. 병력을 저항군 점령지 인근으로 보내면 카불 방어가 허술해지고, 반대로 카불이 함락될 가능성도 있다.
 
장기화될 경우 또 한번의 아프간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은 반격을 위해 안드라브 지역에 병력을 급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NDTV는 탈레반이 22일(현지시간) 아랍어 트위터 계정을 통해 "탈레반 수백명이 판지시르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고 AFP통신은 수십명의 탈레반 전사들이 체력단련을 하고 있는 모습과 무장 군용트럭 험비가 카불 북동쪽 계곡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도했다.
 
다만 탈레반은 저항군 대응을 위한 병력 이동과 별개로, 저항군과의 협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22일(현지시간) 아프간 매체 카마프레스를 인용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 지도부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회의가 곧 열린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지난 21일 카불에 도착한 탈레반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앞으로 2주 안에 차기 정부체제와 관련된 결정을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카마프레스에 의하면 카타르 도하에 머물던 탈레반 지도부 전원이 카불에 입성했으며 여러 정치 세력과 차기 정부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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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 내 주요 무장세력 지도자인 아흐마드 마수드(32)가 22일(현지시간) 탈레반에 굴하지 않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다. 지난 3월27일 마수드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샤 마수드 동상 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저항 세력을 이끄는 아흐마드 마수드는 탈레반과 대화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마수드는 1980년대 아프간·소련 전쟁의 게릴라 영웅이자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다. 그는 지난 15일 카불 함락 직후 카불 북동쪽으로 65km 떨어진 판지시르주로 이동해 저항세력을 모았다. 판지시르주는 천혜의 요새로 소련과 전쟁 당시 격전지였다. 
 
동시에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전에 탈레반과 싸우던 군벌 세력인 ‘북부동맹’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아프간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는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과 비스밀라 모함마디 전 국방장관 등도 마수드 세력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로이터는 "저항이 장기화해 내전으로 치달을 경우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의 추가 병력 이동이 불가피하지만, 저항 세력이 외부의 도움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도외부의 지원이나 우방국의 국경 접근 허용이 없다면 반탈레반 민병대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지난 22일 판지시르 주 입구에서 대규모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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