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포럼 대표/지에스리테일 고문
교수들이 올해 한국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꼽았다.
 
13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대학교수 880명이 추천위원단 추천과 예비심사단 심사를 거쳐 6개 사자성어 중 2개씩 선정해 투표한 결과 총 1,760표 중 514표(29.2%)로 '묘서동처'가 뽑혔다.
 
'묘서동처'(猫鼠同處)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을 비유한 사자성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땅 투기 사건 같은 사회 분위기와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것이 교수들의 설명이다. 해당 내용을 인용했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의 대학 교수 8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9.2%가 '묘서동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고 12일 밝혔다. 묘서동처는 '고양이와 쥐가 자리를 함께 한다' 또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 처음 등장한다. 한 지방 군인이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서로 해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상관이 그 고양이와 쥐를 임금에게 바치자 중앙관리들은 복이 들어온다며 기뻐했다. 오직 한 관리만이 "이것들이 실성했다"고 한탄했다.
 
일반적으로 쥐는 곡식을 훔쳐먹는 '도둑'에 비유된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이다. 둘은 함께 살 수 없는 관계다. 그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은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한통속)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묘서동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 교수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라며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올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묘서동처를 선택한 교수들의 문제의식도 비슷했다. 한 60대 인문학 교수는 "국가나 공공의 법과 재산, 이익을 챙기고 관리해야 할 처지에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불법과 배임, 반칙을 태연히 저지른다"며 "감시자, 관리자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나 기관이 호시탐탐 불법, 배임, 반칙을 일삼는 세력과 한통속이 돼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속출한 양태"였다고 비판했다.
 
"정치판에 여야 모두 도둑놈들이면서 '도둑놈은 나쁜 놈'이라고 떠들어대는 해"(60대·사회)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처럼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여야를 막론하고 겉모습만 다를 뿐 공리보다는 사욕에 치우쳤다"(60대·인문) "현 난국은 여야, 진보와 보수 구별 없이 기득권층의 야합으로 나타난 것"(50대·사회)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 교수신문 제공
내년 대통령 선거를 걱정하는 의미로 묘서동처를 선택한 교수들도 있었다. 
 
한 60대 사회계열 교수는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해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 40대 교수도 "누가 덜 썩었는가 경쟁하듯, 리더로 나서는 이들의 도덕성에 의구심이 가득하다"고 평했다.
 
'인곤마핍'(人困馬乏)이 두 번째로 많은 21.1%의 선택을 받았다.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기나긴 피난길에 '날마다 도망치다 보니 사람이나 말이나 기진맥진했다'고 한 이야기에서 따왔다. 인곤마핍을 추천한 서혁 이화여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비의 피난길에 비유하며 "코로나19를 피해 다니느라 온 국민도 나라도 피곤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인곤마핍을 선택한 교수들도 "코로나로 힘든 시국에 정치판도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인다"(40대·인문) "덕과 인을 상실한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을 본 많은 국민이 깊은 피로감과 실망감을 느끼며 살아간다"(60대·인문)며 지친 국민을 위로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3·4위도 정치권을 비판하는 사자성어다. 3위(17.0%)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자기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툰다는 말이다. 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과)는 "국민은 코로나19, 높은 물가와 집값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저속한 욕설로 서로 비방하면서 싸우고 있다"고 현 사회를 비판했다.
 
이전투구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한 40대 인문학 교수는 "지금 정치인들은 그저 당의 이익과 선거 승리라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멀어서 국민의 삶에는 안중도 없다"며 "말 그대로 '진흙탕 속 싸움'으로,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이 형국이 답답하다"고 전했다.
 
4위(14.3%)에 오른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는 "부동산, 청년 문제 등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현실 정치권을 빗대어 표현"하기 위해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5위(9.4%)에 오른 '백척간두(百尺竿頭)와 6위(9.0%)인 '유자입정'(孺子入井)은 내년에는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백척간두'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비유하는 말이다. '유자입정'은 '아이가 물에 빠지려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송혁기 고려대 교수(한문학과)는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진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깨달음에서 비롯됐듯, 우리가 다시 내딛는 한 발에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있다"며 '백척간두'를 추천했다. '유자입정'을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치권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