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오피니언 > 시사컬럼
[나명현의 세상생각] '전쟁 임박'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해
나명현  |  mheona@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2.19  22:40:1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 구글
   
▲ 달빛포럼 대표/금감원 국장, 런던사무소장
우크라이나 사태가 임계점으로 치달으며, 일부 지역에선 생필품 사재기가 발생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의 병력 철수 발표 이후에도 서방은 병력이 늘어났다고 보고 있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선 무력 충돌에 이어 폭발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를 장악하고 있는 친러세력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 군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제 전쟁은 불기피한 선택의 길로 들어선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사이에 끼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한국과 다르지 않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한가운데 놓인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덕기 예비역 제독은 지난 17일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EU(유럽연합)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거부와 NATO의 동진 중단을 요구한 가운데 서방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고조됐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전략실패가 어떤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해를 돕기위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해'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와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어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실제로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와 현재 사태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 보았다.
 
우크라이나 개황
 
ㅇ 우크라이나는 러시 아와 동유럽의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NATO의 동쪽 최전방 이며, 러시아로서는 NATO에 대한 마지막 완충지라고 할 수 있다.
 
ㅇ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약 3.5배에 달해 유럽에 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며 95% 정도가 평지이고 국토의 67%가 경작지로 한국의 25배 에 달하고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린 곡창지 대이며, 2014년에는 세계 3대 식량 수출국이었다.
 
ㅇ 유럽과 러시아 대륙 에서 볼가강 다음으로 긴 드니프로강 (2,290km, 낙동강은 510km)이 국토의 중 서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ㅇ 전반적으로 대륙성 기후이나 남부는 아열대 기후로 따뜻한 편이다. 북쪽 산간은 강우량이 1,600mm에 이르나 남쪽 흑해연안은 300 mm에 지나지 않는다.
 
ㅇ 인구는 1992년에 5천2백만 명을 넘긴 이래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어 2021년에는 약 4,350만명이며, 우크라 이나인이 약 80%이고 러시아인이 20% 가까이 되며, 공용어는 우크라 이나어지만 민간에서는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드니프로강 동남쪽에는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서쪽에는 우크라 이나인들이 주로 산다.
 
고려인이 3만 명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가 72%로 절대다수이고 카톨릭이 14%를 약간 넘는다.
 
ㅇ 우크라이나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녀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여인들이 미국인과 결혼해 우크라이나를 장인의 나라라고 부르는 미국인이 많다.
 
영화배우 밀라 요보비치 와 밀라 쿠니스 등이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성매매가 만연해 있어 부작용도 심하다.
 
ㅇ 철광석, 망간, 우라늄, 석탄, 천연가스, 원유, 리튬, 니켈, 코발트, 소금, 유황, 흑연, 티타늄 등의 천연자원이 있으며, 세계 제8대 철강생산 국이다. 
 
세계 25%의 티타늄 매장량을 자랑하는데, 항공우주 산업이 부흥한 것도 비행기나 로켓의 중요한 재료로 쓰이는 티타늄 광산을 많이 보유한 덕이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티타늄만큼 망간도 세계 채굴량의 1/5를 차지한다.
 
미 반도체 업체들은 네온 가스의 90% 이상 을 우크라이나에서, 팔라듐의 35%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어, 최근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하자 미국 반도체 업체 주가가 대폭 하락 했다.
 
ㅇ 우크라이나는 우주 항공과 관련된 주요 기술 22개 중 17개의 기술특허를 보유한 나라이며 항공기 설계와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주선 및 발사대 설계 연구센터는 7개이 며, 우주선 제조기업은 12개, 기타 우주 관련 전문업체는 13개가 있다. 그 중 유즈마쉬 (Yuzmash)는 로케트와 인공위성 발사체를 설계 하고 제작하는 회사로 400개 이상의 인공위성 을 개발한 바 있으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긴밀히 협업 중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18개국과 우주 기술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도 2006 년 12월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우주 기술 협력 협정을 맺었다.
 
우크라이나에는 항공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70여 개가 있고, 전문인 력은 8만여 명에 이른다. 그 중 안토노프 (Antonov)사는 화물 및 특수항공기 설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내 IT 산업 종사자는 약 20만 명으로,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아웃소싱 거점지역이며, 그 잠재력이 크다.
 
페이팔(Paypal), 왓츠앱(WhatsApp) 등의 프로그램 개발자 다수가 우크라이나인이 기도 하다.
 
ㅇ 구소련 시기인 1986 년 4월 26일에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는 우크라이나 북단 의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발생한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이다.
 
ㅇ 우크라이나는 대통령 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이원 집정부제를 도입하고 있고, 의회는 단원제로서 450명이 정원이다. 사법부는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세 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사중재원이 별도로 설치돼 있고 헌법재판소가 있다.
 
ㅇ 병력은 2014년 8만 명이었으나 점점 증가하여 30만을 육박하고 있다.
 
ㅇ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와 외교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안타까운 나라 이다.
 
우크라이나의 역사
 
ㅇ 10세기에 키에프 공국으로 독자적인 나라를 운영했으나 폴란드의 지배를 거쳐 17세기 말에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이후 드니프로강 서쪽은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동쪽은 러시아에 속해 있었다.
 
제정러시아가 몰락하고 볼세비키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 하고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소련, USSR)이 성립될 때 그 일원이 되었다.
 
그 이후 스탈린의 박해 와 흉작 등으로 1920, 30년대에 대기근을 겪었으며, 2차 대전 중에 6백만 명이 숙청 당하는 박해를 받았고, 1941년 부터 44년까지 독일의 점령지였던 우크라이나 는 유대인을 포함해 7백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2차대전 의 러시아 군인 전사자 1,100만 명 중에서 1/4이 우크라이나인이었다고 한다.
 
소련의 승전으로 서부 우크라이나를 통합했고, 1945년에 러시아, 벨라 루스와 함께 유엔 창설국으로 참여했다.
 
ㅇ 우크라아나는 소련의 서기장 2명을 배출했는데 후르시초프와 브레즈 네프가 그들이다.
 
후르시초프가 반소감정이 강하던 크림반도를 소개하며 1954년에 우크라이나에 편입시켰는데,  이후 많은 러시 아인들이 크림반도에 진출하여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2014년에 크림반도의 주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찬성 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여 러시아에 편입됐으나,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분쟁지역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집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흑해함대의 가장 중요한 해군기지이기 때문이다.
 
ㅇ 1982년에 고르바 초프의 개혁개방 이후 소련의 중앙정부가 취약해지자 1991년 8월 24일 최고 회의는 독립 선업법을 채택했으며, 12월 1일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84%의 투표와 투표자 90% 찬성으로 독립을 확정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촉진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이후에 만든 독립국가연합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ㅇ 1994년 쿠치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당시 핵보유국인 우크라이나는 비핵화를 추진했다.
 
소련이 배치한 176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1,240개의 핵탄두, 44대의 전략폭 격기, 700기 이상의 핵 탑재 순항미사일, 최대 2,000기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서방의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탄두를 모두 러시아에 반환하고,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미사일 등을 해체해 1996년 마지막 핵탄두가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2001년 핵무기 시설 해체도 완료됐다.
 
우크라이나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는 주장이 많다. 북한도 여기에 동의하여 핵무장을 포기하지 못한다.
 
ㅇ 우크라이나는 서구와 같은 민주주의를 표방 하고 있지만, 국내 정치는 끔찍할 정도로 혼란 하고 그 원인은 대부분 러시아와 서유럽(미국 포함)과의 관계에 대한 지지파와 반대파의 충돌 이다.
 
2004년의 오렌지 혁명 과 2013년의 유로마이단 시위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혼란을 겪었으며 이를 원만하게 조정하거나 통합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의 한 지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원래는 한 나라이고 같은 민족 인데 우크라이나는 떨어져 나간 탕아 혹은 나쁜 동생쯤으로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ㅇ 해방 후에 미군이 들어와서 일본인들을 추방하며 모든 재산을 몰수했다가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물려주었는데, 가끔은 그런 과정없이 우크라이나와 같이 일제시대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요직과 중요한 재산을 일본인들이 그대로 차지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상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동일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인들이 그대로 눌러앉아 전문직을 포함한 요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감상
 
ㅇ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의해 무너지고, 이를 보고 중국이 미국을 만만하게 보고 대만을 필두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펴는 것이다.
 
ㅇ 특히 중국이 미국을 만만하게 보는 것에 더하여, 당장이라도 아무 조건없이 전작권을 회수하는 상황이 겹치면 이런 염려가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ㅇ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먼 산의 불이 아니라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ㅇ 우크라이나 사태를 푸틴과 바이든의 충돌을 넘어 우리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자각에서 면밀하게 관찰하고 우리의 생존과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나명현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본 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용산구 백범로 79 다길 11-5 202호  |  발행일자 : 2013년 12월 16일  |  대표전화 : 02)701-5700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일보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917  |  등록일자 : 2013년 12월 5일
발행인/편집인 : 정재원  | 편집국장 : 심일보(010-8631-7036)  
Copyright © 2013 시사플러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sisaplusnews.com
시사플러스의 기사 등 모든 콘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