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머리카락과 뼛조각
유병언(73·지명수배) 전 세모그룹 회장이 사망한 경위를 두고 갖가지 의혹이 일고 있다.

수사당국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것에 압박을 느낀 유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추정과 함께 고령인 유 전 회장이 수 개월의 도피 생활 과정에서 자연사 했다는 추측도 나온다.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한 매실밭에서 발견됐다. 유 씨가 지난 5월25일 마지막 은신 장소로 파악된 송치재 별장에서 불과 2㎞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발견 당시 지문을 채취하기 곤란할 정도로 부패가 심한 백골 상태였다는 점이 의문스럽다. 불과 10여일 만에 80% 가까이 부패가 진행될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최초 발견자 박모(77)씨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던 한 경찰이 "경험상 시신은 숨진지 6개월 정도 됐을 정도로 부패가 심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초여름 날씨였다는 점에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 유 전 회장이 발견 당시 입고 있던 상의가 겨울용 점퍼라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궁금증도 나온다. 초여름이라도 야간에는 산이나 야외에서 고령인 유 전 회장이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씨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병이 있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의 시신 곁에 길이 8.5㎝ 가량의 ASA 스쿠알렌(유 전 회장의 회사 계열사인 ㈜한국제약에서 만든 상어 추출 건강보조제) 빈병 1개와 순천서 제조한 빈 막걸리 1병, 빈 소주병 2병이 발견된 점도 의문을 증폭시키는 것 중 하나다.

고령자가 도주 중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술을 입에 댔고, 그 과정에서 저혈당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급사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 전 회장의 시신이 하늘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워있었고 뚜렷한 외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연사 가능성도 점친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부검 소견을 봐야 하겠지만 자연사 했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날씨와 야생동물 활동 등을 고려했을 때 10여일만에 시신이 상당 부분 부패할 수 있다고 봤다.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한겨울철이면 빠르게 부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지만 5월말 6월 초에는 낮 기온이 25도 정도로 올라가 부패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며 "야생 동물과 곤충의 활동이 많아지고 고온다습한 상황에서 부패균 같은 미생물 활동도 활발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부패 상태만 놓고 사망 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경우는 애초에 없다"며 "5월25일에 생존이 확인됐다는 점을 토대로 봤을 때 이날과 가까운 시점에 숨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 전 회장은 여러 신도들의 도움으로 도피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이 홀로 외딴 밭에서 발견된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조력자들과 헤어지고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 급하게 도주하는 과정에서 추종자들에 의해 독살당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찰은 1차적으로 외견상 타살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망 과정에서 외부의 물리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추가 감식을 벌이고 있다"면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하루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언 도피자금 20억의 행방은?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지만 장기 도피를 염두에 마련한 도피자금의 행방은 아직까지 묘연하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도피자금으로 최소 20억 원 가량을 현금으로 마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도피가 장기화되면서 측근들을 잇따라 잡아들이고, 자금줄을 끊는 이른바 '고사 작전'을 펼쳤다.

실제 검찰 수사 과정에 유 전 회장이 거액의 현금 뭉칫돈을 가지고 다닌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5월 초 전남 순천 별장에 은신할 당시 인근 땅과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직접 땅주인을 만나 가방에서 5만 원권 뭉치를 꺼내 땅값 2억5000만 원을 지불했다는 땅주인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의 뒷북 수사로 유 전 회장이 여행용 가방에 5만 원권 돈 다발을 가득 싣고 도피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유 전 회장에 대한 지명 수배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유 전 회장은 장기 도피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거액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는 술병과 약통, 옷가지 등이 발견됐지만 도피자금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유 전 회장이 도피자금을 노린 측근이나 제3자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 전 회장이 홀로 숨진 채 발견된 점도 의혹을 뒷받침 하고 있다.

검찰이 측근들을 잇따라 구속시켜 도피자금 공급이 차단되면서 홀로 고립된 유 전 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경찰은 '타살로 결론내리기는 이르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 시신이 부패가 심해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의 거액의 도피자금 행방에 대해 온갖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검·경이 유 전 회장의 측근들이 건넨 도피자금이 얼마나 되는지와 도피자금의 행방 등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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