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가 지난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소희 기자] 검찰이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인 이은해(31)·조현수(30)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이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검은 지난 18일 살인 및 살인미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등 혐의로 이은해와 조현수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은해는 2019년 6월30일 오후 8시24분께 내연남인 조현수 등과 함께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구조요원이 없는 틈을 타 남편 A씨를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A씨에게 4m 높이의 바위에서 3m 수심의 계곡물로 스스로 뛰어들게 유도한 뒤 구조하지 않아 죽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 명의로 든 사망보험금 8억 원을 노려 당시 구조를 할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은 부작위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상 '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범죄인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특정 행위를 하는 '작위'와는 다르기 때문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일단 이들에게 마땅히 구조를 해야 할 의무가 인정돼야 하는 것이 성립 요건 중 하나이다. 이를 형법에서는 '보증인 의무'라고도 한다.
 
아울러 국내에는 위급상황에서 구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구조 행위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범행의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도 함께 입증돼야 한다.
 
그동안 부작위 살인 혐의가 인정된 사례는 드물지만 1992년 저수지에서 발생한 '조카 살인 사건'에서 이 같은 보증인 의무와 범행 고의성이 인정돼 무기징역이 확정된 바 있다. 이번 이은해·조현수 사건과 내용도 유사하다.
 
1992년 대법원은 저수지에 데려간 조카들이 물에 빠졌는데도 구조하지 않고 숨지게 만든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법원은 삼촌인 피고인이 조카들의 위험을 방지하고 물에 빠졌을 경우 구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봤다. 조카 1명의 경우 소매를 잡아당겨 빠트리는 등 범행의 고의성도 인정된다고도 판단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앞선 판례와 달리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는 이은해와 조현수에게 명백한 구조행위 의무와 범죄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역시 앞으로 이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들에게 A씨에 대한 구조 의무, 즉 보증인 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조카 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법원은 삼촌인 피고인이 아이들의 위험 발생을 방지하고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은해 역시 A씨가 남편이었기 때문에 보호해야 할 법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다만 A씨의 경우 성인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달리 피고인에게 구조 의무가 엄격하게 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검찰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부작위 살인은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며 "가령 의사가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안 한 경우 등에 적용되는 것이지, 일반인에게 그런 구조 의무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태영 동아대 로스쿨 교수 역시 "이은해가 A씨와의 혼인 관계에서 (보호자로서) 보증인적 지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상규까지 봤을 때 A씨를 구조할 일반적 가능성까지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들의 범죄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도 쟁점이다. '조카 살인 사건'에서 피고인은 익사 위협이 있는 급한 경사의 저수지로 조카들을 데려갔고, 1명은 직접 소매를 잡아당겨 빠트린 후 이들이 죽을 수 있음을 알았음에도 방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그동안 보험금을 노리고 A씨 음식에 독극물을 타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이들이 계획적으로 A씨를 계곡으로 유인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다이빙을 권하고 구조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재희 변호사는 "유인 행위만으로는 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은해가 직접적으로 A씨를 밀거나 독극물을 투입하는 등 (작위에 의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고의성을 입증하려면) A씨가 다이빙했을 때 실제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던 건지 등도 따져봐야 한다"며 "당시 시간이 늦어 A씨의 위험한 상태를 잘 몰랐다는 식으로 진술한다면, 검찰이 이들의 고의성을 입증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이은해와 조현수가 남편 A씨를 속여 물에 빠지게 했다든가, 뛰어내리라고 부추겼다는 게 입증된다면 이는 오히려 작위에 의한 살인"이라며 부작위 입증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 판례가 많지 않은 만큼, 이은해와 조현수가 살인 혐의 자체를 부인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이들의 진술과 증거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 측에서도 (범행을) 부인하는 전략으로 간다면, 기존의 (부작위에 의한) 살해 판례를 얼마나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며 "기소가 되더라도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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