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명현 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前 금융감독원 국장, 런던사무소장
지인이 보낸 글 중 오늘 단연 돋보이는 글은 '백수의 등급'이다. 웃자고 쓴 글이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목을 클릭하고 읽었다.
 
백수를 5등급으로 나누는데 1급 백수-동백으로 동네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백수. 2급 백수-가백으로 가정에만 박혀있고, 불백(불러줘야 나가는 불쌍한 백수), 3급 백수-마포불백로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4급 백수-화백. 젊었을 때 돈을 좀 챙겼기 때문에 한 주일에 골프장을 두세 번 다니는 화려한 백수. 5급 백수-반백으로 백수들의 반란이라고 했다. 
 
다음은 해당글이다.
 
白手
 
백수(白手)는 맨손에서 유래되었다. 별 다른 직업이 없는 실업자(失業者)를 뜻하는 백수건달과 같은 말이다.
 
100세 장수 시대인 요즘세상에는 백수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자의(自意)이던 타의(他意)이던 백수가 늘고 있다.
 
그런데 백수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1급에 해당되는 백수를 동백이라 한다. 동네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백수다.
 
2급에 해당하는 백수는 가백이다. 가정에만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명 불백이라고도 한다. 누가 불러 줘야만 외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쌍한 백수라는 뜻으로 불백이다.
 
3급은 마포불백이다.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다. 정말 앞이 안 보이는 백수다.
 
며칠 전 어느 집 이야기를 들었다. 수 십 년 같이 살면서 같이 늙어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집을 나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가 마포불백이다.
 
그런데 좀 나은 백수가 있다. 4급 백수다. 화백이다. 말 그대로 화려한 백수다. 젊었을 때 돈을 좀 챙겼기 때문에 한 주일에 골프장을 두 세 번 다니는 백수를 일컫는다.
 
화백은 왼쪽 손이 하얗다. 골프 장갑을 왼손에 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도 백수는 백수다.
 
그런데 요즘 반백이란 말이 돌고 있다. 백수들의 반란이란 말이다. 다행이다. 소망스럽다.
 
우리가 잘 아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반백의 반란꾼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가장 성공적인 ‘반백’이다.
 
지난 7월10일 오후 미국 조지아주(Georgia)에 있는 작은 마을 플레인스(Plains)는 미 전역에서 온 유명인들로 떠들썩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테드 터너 CNN 창업자,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와 트리샤 이어우드 부부가 인구 고작 700명의 이 마을을 찾았다.
 
이곳에 사는 가장 유명한 사람,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결혼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는 지금은 박물관이 된, 80년 전 부부가 다녔던 공립학교 '플레인스 고교' 건물에서 열렸다. 올해 96세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93세인 부인 로잘린 여사는 손님 350여 명을 직접 맞이했다.
 
민주당 소속인 카터 전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해 39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80년 혜성처럼 나타난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는 단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카터는 한 번에 수십만 달러씩 받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거부했다. 그는 2018년 WP 인터뷰에서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거액을 손에 쥐는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내 야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신 카터 부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Habitats) 활동과 전 세계를 누비며 저개발국의 민주적 투표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활동에 전념했다.
 
이 때문에 로버트 스트롱(Washington and Lee University) 교수는 퇴임 대통령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퇴임 후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청렴함이다. 카터는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부가 50년 전에 지은 집에 살고 있다. 백악관 생활을 마친 뒤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
 
부동산 거래사이트 '질로우(Zillow)'에 따르면 현재 시가는 21만3,000달러(한국 돈으로 약 2억5,000만 원)로 미국 집값 평균 이하라고 WP가 전했다. 1961년 지은 방 2개짜리 농장 주택이다.
 
그마저도 네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국가에 기부해 박물관을 만들기로 했다. 부부는 사후에 이 농장 한쪽에 묻히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야 관광객과 방문객을 유치해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터가 사는 마을은 의류부터 공구, 식료품까지 한 곳에서 파는 잡화점 '달러 제너럴'(Dollar General)이 가장 큰 상점일 정도로 소박하다. 이 상점마저도 카터 전 대통령이 '유치'했다. 철도역은 하나 있지만, 도로 신호등은 하나도 없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카터 부부는 토요일 저녁마다 손잡고 약 800m 떨어진 이웃집에 걸어가 종이 접시에 담은 소박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그가 전직 대통령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비밀경호국 요원 3명이 몇 걸음 떨어져 걷는다는 점 뿐이다.
 
이 같은 검박한 생활 덕분일까. 카터 부부는 미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오래 해로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날 축하행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로잘린 여사를 향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카터가 펴낸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책엔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한 혜안(慧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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