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은행 ATM 기계가 나란히 설치된 모습.
서울 시내에 은행 ATM 기계가 나란히 설치된 모습.

[정재원 기자] 시중은행들이 금리인상기 이자마진 확대에 힘입어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둬들였다.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이자마진이 크게 나면서 실적이 늘어난 것이다. 이자이익은 상반기 18조 원에 달했다. 금융업계는 하반기에도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만큼, 금융지주들의 순이익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만큼 갈수록 생활이 팍팍해지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이를 정면으로 지적한 금융당국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업계는 취약차주 지원 등 공적 역할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23일 금융권과 각사에 따르면 국내 4개 금융지주는 상반기 9조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회사별로 ▲KB금융그룹 2조7,566억 원 ▲신한금융그룹 2조7,208억 원 ▲우리금융그룹 1조7614억 원 ▲하나금융그룹 1조7,274억 원을 벌어들였다.

충당금 적립 등 일회성 요인을 반영한 하나금융을 제외하면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이다. 이는 본격적인 고금리 상황을 맞아 이자 이익이 늘어난 덕분이다.

KB국민은행의 2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73%로 전기보다 0.07%포인트(p) 상승했다. 신한은행의 NIM은 1.63%로 0.12%p 올라갔다.

NIM은 금융사가 자산운용으로 번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빼고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은행 수익성을 보는 핵심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 수익성이 좋다는 의미다.

금리가 계속 올라가면서 은행들은 하반기에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추산한 4대지주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17조원 규모에 달한다. 신한 5조원, 국민 4.9조 원, 하나 3.7조 원, 우리 3.2조 원 순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는 와중에, 은행들은 이자장사에 여념이 없다는 지적이 커진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업계는 공적 기능을 강화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이 같은 비판을 수용키로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조정을 위해 정부가 30조 원 규모로 추진하는 새출발기금에 적극 동참하고, 자체적인 대출지원 프로그램으로 취약차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오는 9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종료기한이 도래함에 따라, 금융권과 만기연장·상환유예 연착륙을 위한 협의체를 출범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시중은행, 정책금융기관, 연구기관 등과 합동으로 만기연장·상환유예 연착륙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전날 첫 회의를 열었다. 

협의체는 금융위와 금감원,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 생·손보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여전협회, 기업은행 등으로 구성됐다. 실질적인 연착륙을 위해 회의는 앞으로 매주 개최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 사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은행들만 이자장사로 실적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에 역대 최대 순이익에도 부담이 크다"며 "민생 안정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자체적으로도 고금리 적용 다중채무자의 이자를 낮추고 대출지원 기간을 연장하는 등 사회적 역할과 공적 기능을 확대해 이익을 나누겠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지주사들은 최대 실적을 냈지만, 웃지 못하고 있다. ‘사상최대’, ‘역대’라는 단어사용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과도한 이자장사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반기엔 금리인하 및 우대금리, 대출 지원 등 적극적인 보호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고금리, 고물가 등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만으로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며 “하반기에는 금융지주들이 외형성장보다는 건전성 위주로 관리하고, 취약차주를 위한 대책도 적극적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