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명현 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 금융감독원 前 국장, 런던사무소장​
​나명현 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 금융감독원 前 국장, 런던사무소장​

오늘은 삼복더위 중 가장 덥다는 중복(中伏)이다. 여기서 복(伏)은 '엎드릴 복'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는데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해 굴복시켰다'해서 '삼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 때 왕 덕공이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 세 번의 제사를 지내며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눠주는 풍습에서 유래됐다. 우리나라도 과거 조선시대 때 삼복날 신하들에게 그 당시 귀한 얼음을 주는 특권을 주기도 했다.

복날은 대부분 10일 간격이지만 중복과 말복 간격은 20일이 넘기도 한다. 이때는 월이 바뀐다는 뜻을 담아 말복을 '월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늘은 뭘 먹지?' 생각하다가 문득 지인으로부터 '홍어 이야기'라는 글과 시를 받은 것이 기억났다. 내용이 유익하고 흥미가 있어 소개한다.

홍어 이야기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네 아버지 별명이 왜 홍언지 알아?

홍어는 한 몸에 자지가 두 개 달렸거든~

그래서 바람둥이였던 거구."

홍어 좆은 두 개가 맞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현산어보'라고도 함)에도 홍어에 대한 정보가 있다.

그 中의 일부이다.

'수컷에는 흰 칼 모양으로 생긴 좆(陽莖)이 있고, 그 밑에는 알주머니가 있다.

두 개의 날개(가슴지느러미)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있는데, 암놈과 교미를 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미를 한다.

암컷이 낚시 바늘을 물고 발버둥칠 때 수컷이 붙어서 교미를 하게 되면 암수 다 같이 낚시줄에 끌려 올라오는 例가 있다.

암컷은 낚시에 걸렸기 때문에 결국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흔히 말하는 바,

이는 음(淫)을 탐내는 者의 본보기라고 한다.            

남도 땅 강진에서 태어난 김선태 詩人은 홍어의 '거시기 한' 교미를 詩로 묘사했다.

그는 지금 목포에 둥지를 틀고, 고향 강진을 오가고 있다. 

그도 술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홍어에 관해서도 일찍이 한 발을 걸쳐놓았다 .

'홍어 이야기'라는 詩를 통해서였다. 

홍어 낚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홍어 수컷을 낚는 데에 홍어 암컷을 미끼로 쓰면 직방이다.

갓 잡은 암컷을 실에 묶어

도로 바닷물 속에 집어 넣으면 

수컷이 암컷의 아랫도리에 달라붙어 그대로 따라 올라오지요

대롱 모양의 수컷 거시기는 두 개인데 희한하게 가시들이 촘촘 박혀 있어 발버둥쳐도 잘 안빠진다는 말씀..

거참, 그야말로 거시기 물린 셈입니다. 

그렇게 해 종일 수컷을 낚다 보면, 아랫도리가 너덜너덜해진 암컷은 그만 기진하여 죽고 만다니...

하여튼, 짝짓기를 위해서라면

홍어도 한 목숨 거나 봅니다.

그런 홍어 좆은 뭍에 올라오면 완전히 '찬밥'이다.

홍어배가 주낚(홍어를 잡기 위해 심해에 늘어뜨리는 긴 낚시줄)을 걷어 올릴 때,

큰 암컷이 물린 채 올라오면 어부들이 신이 나서 "암치다" 라고 요즘도 소리친다.

수컷은 찬밥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세'를 당했다.

홍어꼬리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꼬리보다는 짧은 '거시기'가 달려 있으니, 꼬리처럼 달린 것이

도합 셋이다. 

암컷은 당연히 하나 밖에 없다.

수컷은 암컷보다 살이 뻐세기(뻣뻣하고 질기다) 때문에 이왕이면 찰지고 씹는 맛이 좋은 암컷을 더 선호할 수밖에... 

그렇다 보니 수컷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팔리더라도 암컷이 더 값을 받았다.

수컷의 '거시기'를 자르면, 암컷으로 둔갑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어부나 상인의 입장에서는 수컷은 별로 환영 받지 못한 선수다.

나주 영산포에서 '홍어1번지'를 하는 주인장 안국현 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예전 5일장 마다 홍어 장수들이 돌아다녔다.

홍어를 팔기 위해서는 '맛뵈기'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몸체의 살점을 떼내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거시기'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려있어도 환영 받지 못하는 거시기'를 미리 떼내어 놓았다가, 살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한 점씩 맛보게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잘리는 신세'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뭍에 나오기만 하면 '잘리는 신세', 그랬으니 '만만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 사이엔 "만만한 게 홍어좆" 이란 말이 소통되었다.

아래의 글은 홍어 유통지였던 1970년대 初 영산포 선창에서 오고 갔을 대화라고 한다.

영산포 선창에서 '성님' '동상'이 나누는 홍어 '거시기' 대화다.

그냥 간직하고만 있기 보다는 '남도 이야기' 讀者들과 함께 웃음을 함께 하고자 한다.

대화가 너무 솔직했다면,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어이, 동상! 홍애는 어디가 질 맛난지 안가?

누가 머시라고 해도 홍애 배야지를 짝 갈라 갔고

애나 쌈지를 꺼내 찬지름을 째까 친 굵은 소금에다 찍어 묵으믄 그 맛이 차말로 고소해불제!

거그다가 막걸리 한 사발 드리키면 세상 둘도 없는 맛이어불제.

느그들은 애래서 그 맛을 잘 모를 것인디.

성님, 먼 말씀을 그리 섭하게 허시오?

지가 애리다고라? 저도 장개 들어서 처자식이 있는 몸이요.

글믄 형님은 홍애를 어째서 홍애라고 헌지 아요?

껍닥은 시커매도 배깨가꼬 썰어노문 살이 삘개부요.

그래서 붉을 홍자를 써서 홍애라고 했답디다.

이것은 차말이요.

동상, 먼 소리여? 그게 아니여!

홍애는 다른 물괴기보다 넓적하다고 혀서 넓을 홍자를 써서 홍어라고 한 것이여!

너는 몰라도 한참 몰라, 이 무식한 놈아!

성님, 머시라고라? 무식하다고라?

홍애좆 같은 소리 허덜 마시오.

너, 시방 머시라고 씨불거리냐?

홍애좆이라고 해부렀냐? 이런 씨벌놈이 없네?

너, 홍애좆이 먼 말인지 알고나 씨부리냐?

성님도 참, 홍애좆을 지가 왜 모르겄소?

숫놈 꼴랑지 양쪽에 까시 달린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있는 것이 홍애좆이제 머시라요?

동상, 차말로 홍애좆도 모르구만. 잘 들어, 이놈아!

홍애좆은 너같이 씰데 없는 놈이나 밸볼일 없는 놈들을 비꼴 때 쓰는 말이여.

잡을 때 거시기 까시에 찔래서 기찮고,

괴기를 썰어 놔도 암놈보다 맛탱가리가 없어서 잔치집이나 상가집에서도 사가들 안해부러.

그래분께 뱃사람들이 좋아 허겄냐?

아따, 성님. 벨라 유식헌 척 허요 잉?

그래도 숫놈은 심 하나는 끝내주겄소 잉?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쓴께 말이요.

에라, 상놈의 새끼! 근께 너보고 홍애좆이라고 허제."

"만만한 게 홍어좆이냐" 라고 했을 때는

"내가 그렇게 홍어좆처럼 만만하냐"는 항변이고,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라는 자기 주장이다.

소리 높여 말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가시가 박히도록 대항하는 언사인 것이다.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는, 오히려 격정적인 남도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덧붙여 볼까.

'만만찮기는 사돈집 안방'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본다'

'만만한 놈은 성도 없다'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

'만만한 싹을 봤나'.

만만하다'와 관련된 속담들이다.

어느 것도 '만만한 게 홍어좆' 이라거나 ,

'만만한 게 홍어좆이냐' 보다 더 직설적이고 의미 전달의 강도가 센 것 같지는 않다.

​[홍어 - 문예진]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 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

오랜 세월 미식가들은 탐닉해 왔다.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온 우주를 빨아 들일 듯한

여인의 둔덕에

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

홍어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 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중복 더위의 입관식

죽어서야 겨우 허리를 편 노파

차안(此岸)의 냄새.

씻어도 씻어내도

돌아서면 밥 냄새처럼

피어 오르는 가랭이 냄새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밥

붉어진 눈으로

홍어를 씹는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