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 소설 '대지'로 노밸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펄벅이 196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펄벅이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펄벅은 그때의 감동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한 문자가 파문을 낳고 있다. 여당에 대해서조차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듯한 윤 대통령의 인식으로 비쳐지면서 당 분열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가 됐다. 

오늘 한 언론은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를 놓고 윤 대통령이 검찰 등 특정 직역이나 계층의 리더로 자신의 역할을 좁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우려가 크다."고 했다.

분명 윤 대통령의 문자는 부적절하고 경솔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지만, 함께 선거를 치른 당 대표를 ‘내부총질’ 같은 거친 표현을 써가면서 폄훼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당내 일각에서 “대통령이 당 대표를 싫어했다는 소문이 원치 않은 방식과 타이밍에 방증된 것 같아 유감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이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 섬에는 카메라 사라지면 눈 동그랗게 뜨고 윽박지르고, 카메라 들어오면 반달 눈웃음으로 악수하러 오고,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고 ‘양두구육’을 언급하며 응수했다. 이 또한 여당 대표로 부적절하고 경솔한 응수다.  

지난해 역대 최연소 보수당 대표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르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준석 리스크'가 등장했다. 당시 이 대표의 페이스북을 보면 백신 수급 불안정이나 한·미 연합훈련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은 볼 수 없다. 위헌 소지가 다분한 여권의 언론중재법 일방처리 움직임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 대표는 당 안팎의 정쟁엔 공세적으로 몰두했고, 그 결과 볼썽사나운 싸움이 됐다. 급기야 윤석열 캠프 공격에 치중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지금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지금의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이준석 당 대표의 징계도 속좁은 '자기청치'의 결과물이다.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지기'는 커녕 국민은 안중에 없고 서로를 향해 볼쌍 사나운 모습만 연출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그 섬'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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