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이승만·이정학 신상 공개 결정

위부터 이정학 몽타주와 사진, 이승만 몽타주와 사진. 대전경찰청 제공
위부터 이정학 몽타주와 사진, 이승만 몽타주와 사진. 대전경찰청 제공

[신소희 기자] 지난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께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차량을 습격해 현금 3억 원을 훔치고 저항하는 은행 직원에게 권총을 발사해 숨지게한 피의자가 검거됐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7553일 만이었다.

30일 대전경찰청은 대전 은행강도살인 사건 용의자에 대한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승만(52)과 이정학(51)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같은 날 백기동 형사과장을 통해 수사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이뤄진 신상정보공개위원회 결과 범행의 잔인성 및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단, 강도살인 혐의를 받는 이승만(52)과 이정학(51)의 신상 정보 공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열쇠는 21년 전 범인의 'DNA'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하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범행에 사용된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마스크와 손수건에서 시작됐다. 

2011년 12월 대전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사건을 인수해 관련 수사를 이어오다 압수물 창고에 15년째 보관되어 있던 증거물(마스크, 손수건)을 국과수에 분석의뢰해 유전자(DNA) 검출에 성공하며, 2015년 충북의 한 불법 게임장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성과를 냈다.

경찰은 5년간 게임장에 출입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1만 5,000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끝에 올 3월 이정학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8월 25일 사건 발생 7,553일  만에 피의자를 검거하게 됐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지난 2001년 12월 오전 10시께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은행 관계자 3명이 현금 가방을 내려 옮기는 순간 권총으로 협박, 현금 3억 원이 들어있는 가방 2개 중 1개를 챙겨 달아난 혐의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은행 출납 과장이었던 A(45)씨가 총알 4발을 맞고 숨졌다. 범행에 사용한 차량은 같은 날 오후 6시께 범행 현장에서 약 300m 떨어진 서구 둔산동 소재의 한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차량 안에 자동 점화장치를 설치, 불을 내기도 했다.

앞서 이들은 같은 해 10월 14일 오후 9시 30분께 서구 월평동에서 시동이 걸린 채 주차돼 있는 흰색 쏘나타를 훔쳤다. 

이들은 다음 날인 15일 0시께 대덕구 비래동 골목길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차량으로 충격해 의식을 잃게 한 뒤 권총을 빼앗고 범행에 사용했던 쏘나타를 600m가량 떨어진 길가에 버린 채 도주했다.

그리고는 범행 약 20일 전 수원 영통구 영통동에서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된 검은색 그랜저XG를 훔쳐 범행에 이용했다.

이정학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은 운전만 했으며 실제로 총을 쏜 사람은 이승만이며 범행 후 권총을 바다에 버렸다는 내용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범행으로 훔친 돈 중 자신이 9,000만 원을 가져갔으며 나머지 2억 1,000만 원은 이승만이 챙겼다고 이정학은 주장했으며 이들은 사적인 문제로 범행 후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범행을 저지르고 약 300m 떨어진 곳에 승용차를 버린 뒤 다른 차량으로 바꿔 타고 달아났다.

경찰은 범행 후 차량에 불을 내거나 차량을 바꿔탄 점, 수차례 국민은행을 찾아 폐쇄회로( CC)TV 유무를 살피고 현금수송차량이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는 등 상당히 계획적이라고 봤다.

다만 이들이 범행을 계획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충남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해 목격자와 전과자 등 5,321명, 차량 9,276대, 통신 자료 18만2,378건, 탐문 2만9,269개소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02년 8월 제보를 받아 용의자 3명을 검거했지만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는 주장 등을 이유로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결국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은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으며 사건은 21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이승만과 이정학은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수사선상에 오르거나 용의자로 지목된 적이 없었다.

둔산경찰서에 있던 사건은 2011년 대전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설치되면서 인수됐다.

수사를 이어오던 경찰은 2017년 10월 범행에 사용한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손수건과 마스크 등 유류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의뢰했고 그 결과 신원 미상인 남성의 DNA가 발견됐다.

국과수로부터 해당 유전자가 2015년 충북 소재 불법 게임장 현장 유류물에서 발견된 DNA와 동일하다는 답변을 받자 수사에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해당 게임장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종업원과 손님 등 1만 5,000여 명에 대한 DNA 대조, 몽타주 비교, 차량 절도 전력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고 지난 3월 이정학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보강 수사를 통해 경찰은 이번 달 중순께 이정학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에서 검거했다.

이후 이정학의 진술 등을 토대로 이승만도 곧바로 체포했다.

2001년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마스크를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으나 과학 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미제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피의자들은 사건 발생 7,553일 만에 검거됐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수사기록만 15만 여 쪽에 달한다.

검거 2일 뒤인 지난 27일 대전지법 최광진 영장전담판사는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재 이정학은 자신의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승만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대전경찰청 백기동 형사과장은 “두 사람 모두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은행 주변에서 날치기 범행을 벌이다 점점 간이 커져 현금수송차량까지 털게 됐다”라며 “과학 수사 기법의 발전 뿐 아니라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 설치와 범인 검거를 포기하지 않는 형사의 집념 등 3가지가 조화를 이뤄 피의자 검거가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많이 늦었지만 피의자를 검거해 유족과 고인을 위로할 수 있게 됐다”라며 “검찰과도 지속적으로 협력해 권총의 행방과 여죄 등을 파악하고 피의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