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편집국장
심일보 대기자/편집국장

[심일보 대기자]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한국계 수학자로는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가 지난 29일 모교인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의 축사 중 한 대목이다. 

그는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며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준다"고도 했다. 

허 교수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축사를 가름했다.

허 교수가 이날 인용한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있는 곳이 우리 정치권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 다툼, 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된 여당의 내홍은 아수라장 그 자체이다.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여전히 근본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누구 하나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 

'이재명 사당'으로 전락한 야당 역시 그간 정치 행적을 돌아보면 검경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겹겹으로 방탄막을 친 것에 불과할 뿐 민생과 통합과 거리가 먼 행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요즘 하루 걸러 하루 우리 경제에 대한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환율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무역수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경상수지 악화 등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경제 현실이다.

이 암담한 정치경제 현실속에 허준이 교수의 축사를 정치인들은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싶다. 허 교수의 "최고는 못 되더라도 차 차선은 돼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정치권이 막장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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