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이태원 사고 참사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 한 어르신이 절을 하고 있다.
2일 오전 이태원 사고 참사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 한 어르신이 절을 하고 있다.

[심일보 대기자]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달 30일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 "어떻게 이런 일이...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희생자수가 납득이 안 간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필자 역시 기막히긴 마찬가지였다.

진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도대체 핼러윈이 뭔지 궁금해서 구경이나 하려고 오늘 가보려던 참이었다"면서 "기나긴 코로나 국면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나 같은 사람까지도 궁금해할 정도로 대중화한 것이 합쳐져 많은 사람이 한 지역에 집중된 게 문제였나 보다"라고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과 연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고 덧붙였다.

진중권 교수는 3일 중앙일보 '진중권 칼럼'에서 "이 사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이번 참사가 당국의 잘못임을 입증하는 제보부터 받고 나선 그 방송사도 그 전날의 보도에서는 핼러윈의 들뜬 분위기를 한껏 부추긴 바 있다."며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섯 가지의 참사 이유를 들었다.

작금의 상황을 보자면 어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등 8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개정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지난 9월 10일부터 대형 참사 사건이 검찰의 수사 개시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이번 참사에 대한 1차 수사는 경찰이 사실상 전적인 책임을 지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 지휘부의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1시간 21분 뒤에서야 사고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보고가 아니라 행안부 직속기관인 중앙재난안전실 상황보고로 상황을 인지했다. 이 역시 사고 발생 후 1시간 이상 지난 시점이었다. 경찰 지휘부에서 왜 늑장보고가 이뤄졌고, 경찰과 소방의 공조체계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필자는 이번 이태원 참사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지 않기위한 이유로 또 진 교수의 글을 왜곡하지 않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칼럼 글을 인용했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해당글이다.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머릿속에 이런 사고의 가능성 자체가 애초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입된 경찰의 숫자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 인력은 애초에 사고예방이 아니라 범죄예방을 위해 투입된 것이었다. 그러니 이런 사태를 예상해 마련된 대응 매뉴얼이 있었을 리 없다. 설사 경찰이 신고전화 11번에 모두 출동을 한들 수습의 절차를 담은 ‘매뉴얼’이 없는 한, 그 또한 전화 받고 나갔다는 4번의 출동과 뭐가 달랐을지 모르겠다.

두 번째 구멍은 관료주의다. 용산구청장은 ‘주최자 없는 행사’를 ‘현상’이라 불렀다. 그 사고는 구청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찰에서는 자신들에게 시민들의 이동권에 간섭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핼러윈은 이렇게 당국의 ‘책임’과 ‘권한’ 밖에 놓인 이상한 ‘현상’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최자가 없는 핼러윈 축제의 안전을 경찰과 지자체가 함께 책임진단다. 군중의 동선을 지휘하는 시부야의 DJ 폴리스는 이미 축제의 명물이 되었다.

세 번째 구멍은 입법의 문제다. 일본에서 DJ 폴리스가 시민의 이동권에 간섭할 권한을 가진 것은 진즉에 경비입법을 개정해 새로 ‘혼잡경비’ 항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뭘 하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에서 이번 행사가 열리는 시부야의 모든 거리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장소를 미리 체크해 두었다고 한다. 서울시와 용산구에도 시의원과 구의원들이 있을텐데, 비싼 세비 들여 외유나 하면서 왜 이런 것은 안 배워왔을까?

네 번째 구멍은 언론이다. 우리의 언론들이 예언의 은사를 시연하는 동안, 일본의 언론들은 핼러윈 행사 전날 시민들이 안전을 위해 알아야 할 사항을 상세히 보도했단다. 이런 보도를 접했느냐 여부가 혼잡상황에선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고 후에 우리 언론이 범인 찾기에 몰두하는 동안 원인을 분석해 상세히 보도한 것은 일본의 언론이었고. 그런 혼잡상황에서 생명을 지켜줄 안전수칙을 전해준 것은 미국의 언론이었다. 우리에겐 전문가도 없나? 그런 기사를 우리는 인용 보도로 접한다.

마지막 구멍은 왜곡된 시민의식. 이 와중에도 ‘문재인 정권이었다면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 믿는 집단과, 대통령·주무장관·지자체장이 져야 할 지휘 책임마저 부정하는 집단이 서로 쌈질을 한다. 156명의 희생은 그들에게 이렇게 정치적 공방의 소재일 뿐이다.

나랏돈으로 12년 동안 의무교육을 시켜줘도 우리는 ‘인과적’ 사고보다 ‘응보적’ 사고에 익숙하다. 원인을 찾는 논리적 담론보다 책임을 물을 범인을 잡는 놀이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토끼 머리띠를 한 남자를 찾아라.’ 그 놀이 끝에 결국 말단 경찰관들이 범인으로 지목된 모양이다. 드디어 범인을 찾은 언론은 신이 났다. 대통령까지 이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나섰다. 이들이 공동체 전체의 죄를 대속할 희생양이 될 모양이다.

내 눈엔 이게 부조리해 보인다. 또 세월호의 전철을 밟으려나? 존재하지도 않는 범인을 잡으려 특조위를 수차례나 띄웠지만, 성과가 있었던가. 그 큰 희생을 치르고, 그 난리를 치고 어디 해상안전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던가. ‘얘들아 미안하다.’ 이 문구가 또 등장했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공동체적 책임’이다. 이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공범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미안할 것이다. 영원히 미안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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