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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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일보 대기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유대교 문헌 미드라쉬에 등장하는 다윗왕의 반지에 나오는 말이다.

일화를 살펴보면 '어느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 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간곡히 도움을 청한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이 글귀를 적어 넣어 왕에게 바치자, 다윗 왕은 흡족해 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시인 랜트 월슨 스미스의 시로도 많아 알려져 있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중략)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과 유사한 뜻으로 중국 고사성어에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인간사에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새옹지마니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29일 밤 10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일어나 150여  명이 숨지고 130여 명이 다쳤다. 2014년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 이래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안전사고다. 올해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3년 만에 '노마스크'로 치러져 1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몰릴 거라고 예측됐지만 당국은 그에 걸맞은 안전 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참사에 대한 경찰의 부실한 대응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태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모색하기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참사 직후 서울시는 시에서 주최한 행사가 아니라며 거리를 뒀고, 용산구는 정식 지역 축제가 아닌 만큼 안전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 관련 용어를 ‘참사’ 대신 ‘사고’로, ‘피해자’ 대신 ‘사망자’로 통일하기로 한 것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책임의 무게가 가벼워지겠나. 인간사 모든 일이 '세옹지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앞서 이태원 참사 직후 정치 선동에 악용하려는 듯한 시도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남영희 부원장은 SNS에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용산 대통령실 경호 탓에 제대로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못해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인데,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이다. 남 부원장도 비판이 커지자 30분 만에 글을 내렸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유족들 아픔을 짓밟는 몰지각한 처사이자 국가적 해악이나 다름없다.

MBC PD수첩 또한 '당국의 사전 대응 문제점 제보를 기다린다'는 공지를 냈다가 논란이 일자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이처럼 참사가 터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반(反)정부 선동질에 나설 궁리만 하는 '추악함'을 드러냈다. 

아후 참사  조사 과정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당국, 의료기관이 신속히 소통하도록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이태원 참사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재난 관련 기관을 하나의 통신망에 묶으면서 정부는 세계 최초라고 홍보했는데, 정작 참사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서 얻은 시사점을 다시 재난 대책에 접목하려 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4일 “지하철 혼잡시간인 출퇴근 시간대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전날에는 “1만명 이상 모이는 전국 지역축제의 안전관리 합동점검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위성에 앞서 떠오르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한 신문은 다음날 사설을 통해 "합동점검과 전수조사를 통해 아무리 훌륭한 매뉴얼과 예방책을 마련해도 이를 활용할 역량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태원에서 무용지물이었던 재난통신망처럼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8년 전 참사를 겪고도 재발을 막는 데 실패했다. 원인은 장비나 기구가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려는 예방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관련된 모든 부처 관계자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정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제도 타령’으로 일관하고 야당 역시 '정치 선동'으로 끌고 간다면 이태원 사태는 '비극'의 끝이요, '안전 한국'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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