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모가 54년 만에 나타나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유사한 사례를 막기 위해 일명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은 지난 13일 아들 A씨의 사망 보험금 2억4,000만 원 가량을 지급해달라는 80대 친모 B씨의 청구에 인용 판결을 내렸다.

선원으로 일하던 A씨는 지난해 1월23일 거제 인근 바다에서 선박 침몰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A씨 앞으로 선박회사 유족 급여, 행방불명 급여, 장례비 등 2억3,776만 원이 나왔는데, 친모가 54년 만에 나타나 이를 요구했다고 한다.

A씨의 누나 C씨는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B씨가 자격이 없다며 유족보상금 등의 지급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B씨 역시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선원의 사망 당시 그에 의해 부양되고 있지 아니한 배우자, 자녀, 부모 등도 유족에 해당한다'는 선원법 시행령에 따라 B씨가 A씨와 같이 살지 않았지만, 법규상 그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근거가 된 선원법 시행령은 1순위 상속인으로 피상속인에 의해 '부양되고 있던 배우자·자녀·부모·손 및 조부모'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상속인이 없자 2순위 차례인 '부양되고 있지 아니한 부모' B씨에게 보상금이 넘어간 것이다.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C씨는 지난 26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양육한 사람은 필요도 없고 무조건 낳았으니 가져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며 부양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씨
2019년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씨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민법 개정안은 지난 2019년 가수 구하라 씨 사망 이후 불거진 유산 분쟁을 계기로 마련됐다. 20년간 연락이 끊겼던 구 씨의 친모가 구 씨 소유의 부동산 매각 대금의 절반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고, 구 씨 오빠가 이를 막는 법안을 청원하며 법안 발의까지 이어졌다.

20대 국회에서 시작된 입법을 마무리 짓지 못한 국회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를 이어갔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1월 처음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서 의원은 2020년 6월과 지난해 2월에도 미성년 자녀를 버리고 간 부모의 상속권을 자동적이고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민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민법에 있는 '상속인(유산을 받는 사람) 결격 사유'에 '피상속인(주는 사람)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했다.

법무부도 지난해 6월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상속인이 될 사람이 피상속인에 대해 중대한 부양의무를 위반했거나, 범죄 행위 등을 한 경우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다만 결정은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이뤄진다.

두 법안은 자녀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취지는 공유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서 의원은 "구하라법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 데 반해 법무부는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 소송을 걸어야 하는 방식을 주장한다"며 "이는 자녀에게 2차 가해를 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녀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소를 제기하나, 아이가 죽기 전에 키우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맹점이 많다. 법무부가 주장하는 상속권 상실제도로는 국민을 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소송부담을 줄이기 위해 결격사유 등을 보다 명확히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도윤 법무법인 율샘 변호사는 "다른 상속 결격 사유들은 유언 위조 등 형사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법안의) 조문이 좀 더 명확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소송이 걸리기 때문에 이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쟁점들을 다퉈볼 국회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020년 구하라법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구하라법의) 법안 취지는 대체로 비슷한데 해결법에서 조금씩 다르다"며 "다른 법안들에 밀려서 이를 논의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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