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화려한 데뷔
이후 문희·남정임과 여성 배우 트로이카
뛰어난 연기력 각종 여우주연상 휩쓸어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 주목
이후 사실상 은퇴…2010년 '시'로 복귀해
60대에도 여전한 연기력 또 여우주연상
2018년께 알츠하이머 급격히 악화 칩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주최 제38회 영평상 시상식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배우 윤정희가 공로영화인상을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8.11.13.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주최 제38회 영평상 시상식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배우 윤정희가 공로영화인상을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8.11.13.

[김승혜 기자]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프랑스 파리에서 알츠하이머 투병 중 19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난 윤정희는 1960~7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화려하게 데뷔, 이후 문희·남정임과 함께 트로이카로 불리며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뒤 연예계에서 사실상 은퇴했지만, 60대에 영화 '시'로 복귀해 여우주연상을 또 한 번 휩쓰는 저력을 보여줬다. 다만 이후 알츠하이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수 년 전부터는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21년엔 윤정희 가족 간 '후견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윤정희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영문과를 다닐 때였던 1966년 오디션을 보고 배우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1967년에 개봉한 '청춘극장'으로, 윤정희는 '오유경' 역을 맡아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연예계 생활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70년대 초중반까지 '안개' '독짓는 늙은이' '해변의 정사' '분레기' '첫경험' '무녀도' '석화촌' '궁녀' '효녀 심청' 등에 출연,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대부분 시상식을 휩쓸며 최고 배우로 인정받았다. 당시 함께 활동한 문희·남정임과는 여성 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그가 출연한 영화만 330여 편에 달했다.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윤정희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배우 생활을 중단한다. 그런데도 1987년 복귀해 영화 '위기의 여자'를 성공시켰으며, 1992년엔 '눈꽃' 1994년엔 '만무방'에서 주연을 맡아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한국영화평론협회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약 15년 간 영화계를 떠나 있던 윤정희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또 한 번 영화계로 복귀한다. 이 작품에서 윤정희는 자신의 본명과 같은 '미자' 역을 맡아 열연하며 대종상·청룡영화상 등 국내 시상식은 물론이고 LA비평가협회상 등 해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시'는 그 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아 윤정희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칸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시'를 촬영할 때 이미 알츠하이머가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남편 백건우 관련 행사 또는 일부 영화계 행사에 종종 모습을 보였던 윤정희는 2018년께부터 알츠하이머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며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9년 백건우는 언론 인터뷰에서 윤정희가 자신과 딸을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1년엔 '후견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윤정희의 친동생들이 백건우와 딸 백진희씨가 윤정희를 프랑스로 데려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며 백 씨에게 있는 성년 후견인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윤정희 동생들은 2019년 후견인 자격을 놓고 프랑스 법원에 이의 신청을 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2020년엔 국내 법원에도 성년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2심까지 백 씨를 계속 성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윤정희 동생들은 2021년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백건우와 딸 백 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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