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비세스왕의 재판
캄비세스왕의 재판

[심일보 대기자]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장동 개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로부터 아들에게 지급된 50억 원에 대해 어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이 돈이 알선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0년 4월 4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 씨가 정 회계사에게 “아들을 통해 병채 아버지(곽 전 의원)가 돈을 달라고 한다”고 말한 부분이 전문진술이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아들에게 말하고, 아들이 다시 김 씨에게 말하고, 김 씨의 말을 정 회계사가 녹음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들 곽 씨도 지난해 재판에 출석해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 2015년 입사해 2021년 퇴사했다. 재직 기간이 고작 6년에 불과한 31세 회사원이 퇴직금 상여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정영학 녹취록에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달라고 해 골치가 아프다’는 취지의 김 씨 발언도 남아 있다. 그러나 청탁이나 알선이 있었음이 입증되지 않아 뇌물 혐의가 부인됐다. 법률적으로는 몰라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다.

다만 재판부는 뇌물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곽병채에게 화천대유가 지급한 50억 원은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하다"며 "곽상도 피고인이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이 드는 사정도 있다"란 단서를 달았다. 재판부가 유죄의 심증을 갖고 있었지만,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나 다름 없단 얘기다.

수사 초기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던 사실이 상기되며, 무죄 판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1차적으로 사건담당 검찰로 향하고 있다.

10일 뉴데일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0월 14일 문성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전담수사팀으로, 팀장은 김태훈 차장검사였다. 수사팀은 12일 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의 배임 및 횡령, 형법의 뇌물공여 및 뇌물공여약속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문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영장이 기각된 이유로는 검찰 측이 정영학 녹취록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그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한 점, 곽 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 원을 받은 사실에 대한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한 점 등이 지적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검찰 전담 수사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과 수사팀장인 김태훈 검사를 비롯해 담당 검사의 '운동권' 이력도 도마에 올랐다 한다.

김태훈 4차장검사는 법무부 검찰과장을 지내다 그해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받았다. 김 차장검사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박범계 법무부장관을 거치며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검찰 인사를 총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는 징계 실무를 담당하는 등 지금까지 대형 특수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

김 차장검사는 또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 출신으로, 1991년 5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으로 '민주자유당 해체와 공안통치 반대' 등을 외치며 서울 여의도 민자당 중앙당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바 있다.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은 그는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차장검사는 1994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후 비주사파 학생운동 조직으로 꼽히는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였던 지난해 5월,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 인사로 김 차장검사는 수사팀장에서 물러나 부산고검으로 좌천된 바 있다.

결국 항소의지를 밝힌 검찰은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정영학 녹취록 외에 다른 진술과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과거 굵직한 사건 중 하나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의 경우도 1심에선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2심에선 유죄로 뒤집혔다. 

다수의 국민들이 이번 판결을 보면서  '금수저가 받은 돈이 아빠에게 전달된 사실이 없고 아빠의 직무와 무관하다면 고위직 자녀가 소속 회사로부터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괜찮다는 건가.'라며 좌절하지 않을까 싶다. 

SNS상에는 초기 르네상스를 빛낸 네덜란드의 뛰어난 화가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가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이 회자되고 있다. ​

약 2,500년 전 페르시아왕 캄비세스는 당시 재판관이었던 시삼네스(Sisamnes)가 평결을 돈을 받고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죄에 대한 형벌로 산사람의 껍데기를 벗기는 가장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일반인보다도 훨씬 더 무겁고 엄한 형벌을 내림으로써 부패한 법관과 관리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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