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박인수(좌측).
테너 박인수(좌측).

[김승혜 기자]  테너 박인수가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38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성악과 재학 중이던 1962년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전곡을 부르며 성악가로 데뷔했고, 1967년에는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줄리아드 음대에서 마리아 칼라스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1976년부터는 미국과 남미 등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년의 절반 이상은 연주여행을 다녔다. 뉴 헤븐 오페라단과 버팔로 오페라단에서 '라 보엠'의 '로돌프'역을 맡았고, 캐나다 온타리오 더 쇼 페스티벌에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바쿠스'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198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후에 클래식 대중화에 공을 들였다. 1989년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해 만든 국민가요 '향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고인은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향수'를 부를 때 크로스오버를 시도해보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며 "정지용의 시와 거기에 붙인 작곡가 김희갑의 곡이 좋았고, 제가 필요하다고 찾아온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인은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1980년대 클래식계에서 배척당해야 했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벽이 허물어지지 않고서는 클래식 음악은 결국 '일부 계층'을 위한 음악이 되고 말 것"이라며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대중을 위해 곡을 만들었듯이 오늘날의 성악가도 훌륭한 음악을 일반 대중에게 들려주는 매개체가 돼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고인은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생전 국내외에서 2,000회 이상의 독창회 무대에 섰고, 300회 이상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2011년 문화예술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안희복(한세대 음대 명예교수)씨와 아들 박상준(플루티스트)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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