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대상 회사 '쉘', 주가부양 '펄'
자동차내장재 회사로 바이오산업
前창립 회계법인 통해 보고서 조작
발행 반려 보고서 2박3일만에 베껴
"일반투자자 낚으려 회계사와 결탁"

[정재원 기자]    '1세대 기업사냥꾼'의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인회계사들이 한 바이오 사업 가치를 뻥튀기하는 평가 보고서를 사흘만에 베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공인회계사 출신 기업사냥꾼 이모(52)씨 일당은 자동차내장재 회사인 디아크를 2018년 인수했다.

이들은 주가조작의 대상인 코스닥 상장사, 속칭 '쉘(Shell)'을 인수한 뒤 호재성 사업이나 공시, 뉴스 등 주가 부양 수단인 '펄(Pearl)'을 이용해 주가를 띄워 차익을 실현해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쉘과 펄은 주가조작 사범들이 주로 쓰는 은어로 알려져있다.

당초 이 씨 등은 '펄'의 일환으로 2019년 7월께 가상자산(가상화폐)거래소 인수를 추진했다가 철회하면서 도로 하락한 디아크의 주가를 띄울 새로운 소재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러던 중 전직 자산운용사 고문 한모(50)씨 등의 소개로 캐나다 소재 '난소암 치료제' 개발 바이오 기업을 알게 됐고, 이 회사의 바이오자산 양수를 새로운 '펄'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이들은 마치 디아크가 3,651억 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바이오 자산을 양수해 향후 임상3상을 진행하는 등 바이오사업을 실제로 영위할 것이란 취지로 허위 공시, 과장 언론보도를 통해 주가를 상승시킨 뒤 사전에 보유한 주식을 매도해 부당이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씨 등의 계획은 외부에서 발목이 잡혔다. 규정상 바이오 자산 양수계약을 이행하려면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의견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씨 등은 2020년 1월초 한 회계법인에 무형자산 가치평가를 의뢰했지만 참고자료의 신뢰성이 부족하고, 이들이 요구해온 3,000억 원 상당의 평가액 달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 이 씨는 과거 자신이 창립한 A회계법인에서 알던 최모(52)씨의 소개로 그해 2월과 4월 두차례에 걸쳐 B회계법인과 가치평가 보고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양수도하려는 무형자산의 양수도 금액을 300만 달러(3,651억 원 상당)로 높인 평가의견서가 B회계법인 내부 심리에서 '평가금액 과다, 거래 정당성 부족,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 가능성' 등의 사유로 발행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당시 캐나다 회사와의 계약 체결일인 그해 4월20일까지 보고서를 공시해야했던 이씨 등은 사흘 전인 그달 17일 다시 A회계법인의 박모(45) 회계사, 정모(48) 심리실장과 다시 5,500만 원짜리 용역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소장에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박 씨 등은 B회계법인이 작성한 가치평가보고서의 최종본과 기초자료를 USB로 넘겨받았다고 한다.

이후 박 씨 등은 A회계법인 명의로 보고서를 발행하되, 일부 수치를 조정해 이씨 요구대로 평가금액을 500억 원 가량 추가로 높인 것 외에는 B회계법인이 작성한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베끼는 수법으로 2박3일만에 보고서를 완성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또 일반 투자자들이나 감독기관의 의심을 피하려고 용역계약일은 3월31일로 소급하고, 실제 17~19일 사흘에 불과했던 평가기간은 4월1일부터 19일까지로 허위 기재하기까지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런 허위 공시 사실에 기초해 당시 대표이사 이모(44)씨 등은 언론 인터뷰에서 디아크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난소암 치료제 등 바이오사업에 진출한 것처럼 허위·과장 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이 씨 등이 2020년 3월부터 디아크가 거래정지가 된 2021년 3월까지 얻은 부당이득은 약 92억6,845만 원으로 추산됐다.

이밖에 외부회계감사 계약을 체결한 공인회계사가 이 씨 등으로부터 감사를 잘 봐달라는 유흥주점 접대 청탁을 받은 것도 공소장에 기재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6일 이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공인회계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주범 이 씨는 일반 투자자들을 낚기 위해 인적관계가 있는 다수의 회계사들과 결탁하고 회계법인까지 동원해 가치평가보고서를 조작했다"며 "전문 회계지식을 범행에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씨 등 일당 10명의 첫 재판은 오는 1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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