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에너지연구소 및 한양대 연구진이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 (사진=김현탁 교수 제공)
퀀텀에너지연구소 및 한양대 연구진이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 (사진=김현탁 교수 제공)

[정재원 기자] 국내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개발 성공 여부를 두고 국내외 학계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관련 연구에 투자하거나 약간이라도 관련 있는 종목들이 '자의반 타의반' 테마주에 묶여 주가가 요동쳤다. 전세계 연구자들은 아카이브에 올려진 논문을 토대로 상온 초전도체 'LK-99'에 대한 검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LK-99'의 진위는 입증될 수 있을까.

발단은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라온 한국 과학자들의 초전도체 관련 논문이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국내 연구진이 약 30℃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를 발견해냈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고, 자석을 공중부양할 정도의 마이스너(반자성) 특성을 가진 신물질이다. 자가공명장치(MRI)나 자가부상열차에 쓰인다. 그동안 초전도체는 초저온·고압력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는데, 상온에서도 가능해질 경우 제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전세계 과학계가 들썩인 이유다. 만약 이 기술이 구현만 된다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초전도체 관련 학계에서 이 논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회의적이다. 동료 평가와 같은 교차 검증이 안됐다는 이유에서다. 개발자 측에선 조만간 공식 발표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NK-99' 개발 역사는 90년대부터…2주 전 '아카이브' 등재 후 관심 폭발

'NK-99'가 뜬금없는 건 아니다.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한 연구의 시작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진은 고(故) 최동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1990년대 주장한 이론(통계역학적 방법에 의한 초전도 이론)을 토대로 약 20년에 걸쳐 1,000회가 넘는 실험을 반복한 결과 상온 초전도체를 구현해냈다고 밝히고 있다. 이석배 대표는 고 최동식 교수의 제자다.

LK-99라는 신물질을 발견한 것은 1999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려대 비전임교수를 맡고 있던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원의 이니셜과 발견 연도를 붙인 것. 이후 이석배 대표는 2008년 퀀텀에너지연구소를 설립해 연구를 지속하며 초전도체 관련 특허 등을 출원해왔다.

2019년에는 해당 연구가 교육부의 '창의도전연구 기반사업'에 선정됐다. '새로운 초전도 물질 개발을 위한 저자기장 영역 마이크로파 흡수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억 단위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초전도체 논란이 급격히 커진 이후 정부가 사태의 추이를 주의깊게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2~3월에는 유튜브 등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초전도체 시연 영상을 공개했고, LK-99 개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문이 본격화된 것은 약 2주 전 관련 논문이 아카이브에 등재된 이후부터다. 해당 논문에는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를 어떻게 만들었는 지 사실상의 레시피가 담겨있다.

약 3일에 걸쳐 납과 구리를 고온에 반복적으로 굽고, 화학 처리를 한 결과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골자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들어진 상온 초전도체를 'LK-99'라고 명명하고 1기압에서 126℃까지 초전도체 성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LK-99 재현에 전세계 뛰어들었지만 아직 확인 X…이석배 "곧 내용 정리해 발표하겠다"

논문의 아카이브 등록 이후 전세계에서는 똑같은 방법으로 LK-99 재현 실험에 나섰다.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등 기초과학 강국들이 모두 뛰어든 것. 하지만 대부분의 실험이 전기저항 0, 마이스너 효과 등 초전도체의 특성을 명확히 보이지 못하며 실패로 귀결됐다.

물론 긍정적인 분석도 있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LK-99 제조 과정에서 물질의 전자 구조에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확인한 결과 합성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상온 초전도 현상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현재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중국 선양재료과학국가연구센터 등이 LK-99의 재현을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논란이 치열하다. 국내 물리학·재료공학·기계공학·전기공학의 관련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지난 2일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LK-99 검증위원회'를 꾸렸다.

아카이브 등재 논문 만으로는 상온 초전도체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에서 LK-99의 시편(샘플)을 제공해 국내 연구진들과 교차검증을 해보자는 것이다.

국내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는 1차 브리핑을 갖고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개발 성공했다고 주장한 상온 상압 초전도체 'LK-99' 물질과 관련해 초전도성을 유지하는 물질로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그 이유로 연구소가 발표한 논문 데이터들이 일반적인 초전도체가 보이는 특성과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연구소 측이 아카이브에 공개한 논문 원고에 따르면 저항 그래프에서는 저항이 0이 아니며 임계온도 근처에서는 금속의 온도-저항 모습이 나타난다.

또 초전도체는 일반적으로 임계온도에서 자화율이 0에 근접하게 돌아오는데 해당 물질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마이너스 값으로 유지하고 있어 보통의 초전도체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게 검증위 측의 설명이다.

검증위는 공개된 영상에서 시편(샘플) 움직임이 초전도체가 아닌 물질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상에서 LK-99는 자석 위에서 떠 있지만 항상 일부가 자석에 붙어 있는 상태고 움직인 후에도 진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검증위는 "이러한 특성은 초전도체의 자기부상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논문에서는 완벽한 샘플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만 공중부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석과 시료 사이에서 인력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어 상대적인 반발력으로 시료가 자석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검증위는 "이러한 의견이 LK-99의 초전도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증위는 현재 논문에서 제시된 방법에 따라 LK-99 시료를 재현해 상온 상압 환경에서 초전도 특성을 측정하는 것과 동료 평가(피어 리뷰)를 거치지 않은 해외 논문에 대한 검토 등 두 갈래로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를 비롯한 LK-99 연구진 측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LK-99 논문 원고 저자 중 한명인 김현탁 미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초전도저온학회의 샘플 요구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좋은데 샘플은 직접 만들어서 검증하면 되지 않나"며 "돈 빌려서 어렵게 사업하는 분들한테 와서 조직적으로 횡포를 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인원이 적은 상황에 각지에서 요청한 샘플들을 만들고 있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내용을) 모아서 정리해 발표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LK-99의 진위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굳이 개발 연구진의 공식 발표 외에도 국내외에서 상온 초전도체 연구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표준 규약까지 마련된 만큼 실험이 종료되는 대로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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