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미공개정보 이용·증권계좌 임의개설 연이어
내부통제 부실·윤리의식 결여…"은행권 신뢰 깎여"

[정재원 기자] 은행권에서 횡령과 비리 등 대형 금융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금융의 본질인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BNK경남은행의 500억 원대 횡령에 이어 KB국민은행의 미공개정보 활용 주식투자, DGB대구은행의 비위가 드러났다. 은행의 내부통제가 부실한 데다 은행원의 도덕적 해이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범죄·비위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대구은행에서 일부 지점 직원들이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고객 동의 없이 1,000여 개의 주식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확인돼 금융감독원이 9일 긴급 검사에 나섰다.

국민은행에서는 증권 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이 고객사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적발돼 9일 검찰에 넘겨졌다.

이달 초 BNK경남은행에서는 투자금융본부 직원이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상환자금 562억 원을 횡령·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해왔으나 '구멍'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은행들은 내부통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남은행의 경우 고위험 업무인 PF 자금 관리를 한 직원이 15년간 담당했다는 점에서 횡령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직원은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2016년 8월부터 자신의 가족 등 제3자 계좌로 대출상환금을 이체하거나 PF 시행사의 자금인출 요청서를 위조하는 등 전형적인 횡령 수법을 사용했다.

장기근무자의 순환 근무 원칙,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 분리, 거액 입출금 등 중요 사항 점검 등 기본적인 내부통제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국민은행에서는 증권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이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 중 61개 상장사의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는 과정에서 무상증자 규모·일정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

이들은 본인과 가족 명의로 정보공개 전 대상 종목 주식을 매수하고 무상증자 공시로 주가가 상승하면 대상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다. 이들 중 일부는 타 부서 동료 직원과 가족·친지·지인(회계사·세무사 포함)에게도 무상증자 실시 정보를 전달했다.

증권대행업무 부서에서 취득한 정보를 직원들끼리 공유하는 등 내부통제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러한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은 미공개 정보를 다루는 만큼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계좌도 신고해야 하는 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게다가 제3자에게 정보를 공유했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대구은행의 경우 고객이 영업점에서 작성한 A증권사 계좌 개설신청서를 복사한 후 이를 수정해 B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개설하는 데 활용했다. 이를 숨기기 위해 고객의 계좌개설 안내문자(SMS)도 차단했다.

통상적으로 은행에서는 증권사 계좌뿐만 아니라 입출금계좌 개설도 내부 시스템 입력과 결재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확인을 거친다. 계좌개설 시 고객 동의 여부가 크로스체킹되지 않고 SMS까지 차단한 것을 보면 직원 개인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도 아쉬운 부분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도 직원이 허위로 보고하거나 고의로 신고를 누락하면 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어 개인의 일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은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결여된 데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내부통제 부실이 비단 일부 은행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금액은 592억7,300만 원으로 경남은행을 포함해 11개사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은 일부 은행들은 내부통제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런 일이 터지면 아무래도 관련 부서에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도 의심받고 지탄받는다"며 "업계 전반의 신뢰를 깎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