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기습 배경은 사우디·이스라엘 둘러싼 중동 패권?
네타냐후의 '정치적 위기'…기사회생인가 또 다른 위기인가
美 대선에 영향…'전통적 민주 지지' 아랍계 美국민 표심 이탈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자동차가 로켓을 맞아 불에 타고 있다.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날 오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5000발을 발사했다. 2023.10.07.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자동차가 로켓을 맞아 불에 타고 있다.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날 오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5,000발을 발사했다. 2023.10.07.

[김승혜 기자]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또다시 전란의 불길이 일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소위 '알아크사 홍수' 기습 이후 그 근거지인 가자 지구에서 연일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중동 주요 국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복잡한 셈법에 빠진 모습이다.

세계 놀라게 한 하마스 기습…배경은 중동 패권 경쟁?

지난 10월7일 이뤄진 하마스의 이른바 '알아크사 홍수' 기습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하마스는 공격 직후 이스라엘이 그간 서안과 가자 지구를 탄압하고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모독했다는 점을 명분으로 들었다.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세계 3대 성지에 속한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가 꾸린 우파 연립정부 출범 이후 이곳에서는 올해 이스라엘 경찰이 예배 중이던 팔레스타인 주민을 체포하는 등 이슬람 신도들의 정서를 자극할 만한 사건이 이어졌다.

종교적 이유보다 지정학적 이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번 분쟁 발발 전 중동에서는 미국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가 추진돼 왔는데, 같은 수니파인 하마스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습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수니파에 속하지만, 사우디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관계를 정상화하면 향후 서안을 관리하는 비교적 온건한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쪽으로 균형이 기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셈법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수니파·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중동 지역의 패권을 두고 오랫동안 경쟁해 왔다. 이란은 이번 분쟁 발발 이후 지속해서 하마스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정치적 위기' 네타냐후, 하마스 기습으로 기사회생?

종교적·지정학적 배경이 혼합된 하마스의 기습은 이스라엘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기습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하마스에 전례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비록 적지 않은 이스라엘 희생자가 나왔지만, 하마스의 기습 및 이후 전시 체제는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호재로 평가됐다. 뇌물수수·부패 등 혐의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현직 기소된 그는 올해 들어서는 사법 정비에 반발하는 여론의 시위 등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왔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의 기습 및 전시 체제 돌입이 자신을 향한 부정적 여론을 일시적으로나마 외부의 적으로 돌릴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연일 성명과 연설로 '어려운 시기'를 강조하며 국민 단합을 촉구 중이다.

제반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스라엘은 단기간 내에는 대(對)하마스 강경 기조를 지속할 전망이다. 특히 개전 이후 제기된 초기 대응 실패론을 상쇄하고, 이번 기습으로 훼손된 자국의 군사·정보 강국 이미지를 회복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美 '중동 혈맹' 이스라엘, 바이든 대선가도 걸림돌?

한편 중동에서 벌어진 분쟁은 동맹인 미국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이번 분쟁 초기부터 하마스의 기습을 '순수한 악'으로 규정하고, 인근 지역에 항모를 보내는 등 강력한 이스라엘 지지 메시지를 표해 왔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혈맹으로, 중동 정책에 있어 오랫동안 핵심 국가로 꼽혀 왔다. 아울러 유대계 미국인 표심은 미국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평가된다. 2020년 기준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760만 명, 인구 2.4%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한 달여 동안 분쟁이 이어지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지상전에 돌입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도 점차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2024년 재집권을 노리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경계 중이다.

아울러 그간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아랍계 미국인 표심 이탈도 엿보인다.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아랍계 미국인 유권자들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17%로, 2020년(59%) 대비 무려 42%포인트 폭락했다.

전쟁 장기화, 모두가 부담…이스라엘 둘러싼 국제사회 비판도 커져

일단 전쟁 장기화의 부담은 미국만의 몫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습을 감행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진격 앞에 근거지인 가자 시티에서 수세에 몰렸고, 이란은 '레드라인'을 거론하며 연일 위협적인 메시지를 내면서도 막상 본격적인 개입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쟁은 초반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기사회생 기회로 평가됐지만,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가며 국제적인 비판에서 이스라엘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2일(현지시간) 기준 가자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9000명 이상이다.

이와 관련, 남미 국가인 볼리비아는 지난달 31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규탄하며 단교를 선언했다. 2020년 관계 재건 이후 3년 만이다. 아울러 바레인은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경제적 관계를 중단한다고 했다. 요르단도 대사 소환에 나섰다.

나아가 유엔에서는 최근 이스라엘의 난민촌 폭격을 두고 전쟁범죄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앞서 유엔 회원국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시작한 지난달 27일 긴급 총회를 열어 인도주의적 접근을 위한 휴전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주목…이스라엘 수용 관건

길어지는 분쟁에 당사자는 물론 주변·관계국이 모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세계의 시선은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수립을 골자로 한 이른바 '두 국가 해법'에 쏠리고 있다. 이번 분쟁 국면에서 중동 특사를 파견한 중국이 이 방안을 사태 해결의 핵심으로 강조 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9일 공개석상에서 이번 분쟁을 해결할 근본적 방법으로 두 국가 해법을 거론했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서방은 물론 교황도 두 국가 해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와 그를 위시한 이스라엘의 우파 연정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두 국가 해법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분쟁 초기에는 한국의 이름도 서방 정치권에서 오르내렸다. 지난 8월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 억류 자국민 석방에 관한 합의를 이뤄냈는데, 그 조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산 원유 대금 동결 해제가 다뤄진 것이다.

이에 분쟁 발발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는 해당 자금이 결국 이란 정권에 넘어가 하마스와 같은 무장 테러 단체 지원에 쓰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미국과 카타르 정부는 카타르 중앙은행으로 넘어간 해당 자금 재동결에 합의했다.

아울러 미국 언론에서는 하마스가 사용한 무기 중 북한산이 포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은 김성 유엔 대사를 통해 이런 보도를 '근거 없는 루머'로 일축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측에 지지를 표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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