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ASML 고객…차세대 공정 '클린룸' 이재용에 기회
16차례 순방 중 특정 기업 방문은 처음…장비 '열세' 고려
반도체 공급망 확보·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구축 목표
1시간 넘게 1호기서 반도체 회의…전주기 공정 완성 꾀해
"한국 정부, 양국 반도체 협력에 필요한 모든 지원" 약속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왼쪽 세번째) 국왕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장비 생산기업인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정부 및 기업간 MOU 체결식을 마친 뒤 최태원(왼쪽) SK 회장,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회장, 피터 베닝크(맨 오른쪽) ASML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왼쪽 세번째) 국왕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장비 생산기업인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정부 및 기업간 MOU 체결식을 마친 뒤 최태원(왼쪽) SK 회장,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회장, 피터 베닝크(맨 오른쪽) ASML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김민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네덜란드 순방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가 ASML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데 지원 사격을 했다.  특히 네덜란드와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해 반도체 소재와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공급망 안정화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수출 기업들이 나홀로 고군분투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인 제가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남동부 펠트호번 소재의 ASML 본사를 방문, 삼성전자-ASML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연구개발(R&D)센터 설립' MOU, SK하이닉스-ASML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 공동 개발' MOU 등 기업간 2건의 MOU 체결을 이끌어냈다.

16차례 순방 중 기업 방문은 처음…'슈퍼을' ASML 선택

윤 대통령은 이번 네덜란드 순방에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슈퍼을(乙)'이라 불리는 ASML 본사 방문을 핵심 일정으로 잡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동행 인사 명단에 올렸다.

취임 후 16차례에 이르는 해외 순방에서 특정 해외 기업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아닉스가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노광장비 생산기업인 ASML사의 주요 고객사이지만 미국의 인텔과 대만의 TSMC의 지분 투자에 밀려 EUV 장비  확보에서 열세에 있는 상황을 고려해 지원하기 위한 행보다. ASML사 방문을 통해 삼성과 SK가 EUV 장비 수급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특히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인 2nm(나노미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삼성에게는 ASML사 방문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ASML사가 이날 윤 대통령에게 공개한 '클린룸'은 2나노 반도체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최신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 회장이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2나노 기술 개발과 관련한 장비 확보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2나노 기술은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이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 660조 원 규모 시장을 선점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ASML과 계약을 하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회장이 2020년 10월과 지난해 6월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등 ASML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방한 당시 페터르 베닝크 ASML 회장과 차담회를 개최, 이 자리에 이 회장과 최 회장을 불렀다. 

대통령실 "이번 순방은 반도체 순방"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목표

ASML사를 상대로 한 윤 대통령의 세일즈는 기업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정상 차원에서 지원하는 데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한국과 반도체 강국인 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은 이번 네덜란드 순방의 목표를  처음부터 '반도체'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도 순방 직전 AFP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협력은 이번 순방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이라며 이번 네덜란드 방문은 양국간 반도체 동맹 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춘섭 경제수석도 "이번 순방은 한마디로 반도체 순방"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네덜란드로 향하던 전용기 안에서 참모들과 가진 2시간 가량 순방 관련 회의에서 절반 이상을 반도체 관련 논의에 할애한 것도 이번 순방의 목표를 반도체 협력에 뒀다는 방증이다. 

반도체가 산업 영역에서 뿐 아니라 안보 자산이자 기술 패권을 결정 짓는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자, 네덜란드 등 반도체 강국과의 협력이 '동맹' 수준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ASML를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핵심 협력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가 전 주기의 생산 공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노광 장비 독점 업체인 ASML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 인공지능(AI)확산에 따라 고성능칩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강국 수성 여부가 반도체 강국 네덜란드와의 협력 강도에 따라 달려 있다는 판단에서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브라반트주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해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피터 베닝크 ASML 회장과 함께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기 앞서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공동취재)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브라반트주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해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피터 베닝크 ASML 회장과 함께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기 앞서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공동취재)

윤 "한국 기업과 협력해 공급망 안정에 기여해달라"

윤 대통령은 ASML 본사를 방문해 "그간 ASML이 선도한 기술혁신이 전 세계 4차 혁명의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한·네덜란드 기업의 반도체 협력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양국 정부 간 직접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윤 대통령 ASML 본사 방문에는 ASM의 벤자민 로 CEO, 자이스의 안드레아스 페허 CEO, 연구기관 IMEC의 루크 반 덴 호브 CEO벤자민 로 ASM 최고경영자 등 반도체 기업인들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국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 반도체 혁신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노력에 기여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13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반도체 협력을 넘어 반도체 동맹으로 격상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회담의 방점은 반도체 대화체 신설 등을 통한 반도체 동맹 제도화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 체결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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