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부터 수십 곳 돌며 폐지 모아와
폐지 가로로 펴 가슴팍 높이까지 쌓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니 하는 것"
전국 폐지 수거 노인 4만2,000명 추계
폐지 단가↓, 눈·비에 젖어 제값 못 받아

[신소희 기자] 하얀 입김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지난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물상 앞. 허리가 약간 굽은 채 소형 리어카에 폐지와 빈 병을 모아 온 강승림(84)씨는 고물상 앞에 다가서자 힘에 부친 듯 리어카를 털썩 내려놨다.

30일 뉴시스 취재 결과, 29일 오전 9시 기온은 영등포구 기준 -1.4도, 체감온도는 -0.2도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폐지 등을 수거하느라 몸에 열이 났는지 강씨 옷 위로 하얀 연기가 일고 있었다.

강씨가 가로로 펴 쌓아 올린 폐지더미는 가슴팍 높이까지 닿고 있었는데, 최근 내린 눈 때문인지 곳곳이 눅눅해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근 쪽방촌에 산다는 강씨는 "아침부터 몇 시간을 이렇게 모아서 가져가도 2,000원 정도만 받는다. 예전에는 6,000원 정도는 받았는데 지금은 그 절반도 못 받는다"라며 "그래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한숨 쉬었다.

뒤이어 김유순(73)씨가 소형 리어카에 싣고 온 폐지와 빈 병을 팔아 3,300원을 손에 쥐었다. 김 씨는 이날 오전 6시부터 3시간 동안 수십 군데를 돌아다니며 폐지 등을 모아왔다고 했다.

허리에 장애가 있다는 김 씨는 복용하는 약 등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폐지 수거를 한다고 했다. 그는 "혼자 사니까 마음도 춥고 그런 게 힘들지. 그래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라고 전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 고물상. 김유순씨가 공병을 팔고 받은 3300원.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 고물상. 김유순씨가 공병을 팔고 받은 3300원.

최근 연일 영하권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파 등 생사 문제를 겪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폐지 수거 일을 놓지 못하는 노인 수가 전국에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 수는 4만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됐다.

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 6월부터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직접 만나 일대일 조사를 실시한 결과, 폐지 수집 노인들은 일주일 평균 6일 하루 5.4시간을 일해 월 15만9,000원을 벌었다. 하루 평균 수입은 6,225원, 시간당 수입은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에 불과했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은 경제적 목적 때문에 폐지를 줍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인 중 54.8%는 '생계비 마련' 때문에, 29.3%는 '용돈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답했다. '건강 관리' 이유는 9.1%로 나타났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폐지 단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고된 육체노동에도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021년 12월 ㎏당 156원과 153원을 기록한 폐신문지와 폐골판지는 2년이 지난 이달 기준 각각 128.5원과 76.4원으로 반값 가까이 떨어졌다. 그에 반해 물가는 큰 폭으로 올라 실질 가처분 소득은 크게 준 상황이다.

아울러 최근 잦은 눈과 비로 인해 폐지 품질이 떨어져, 기껏 수거해와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종로구의 한 고물상 주인은 "최근 눈이나 비가 많이 왔는데, 폐지가 물에 젖으면 본래 가격의 80% 정도만 돈을 쳐준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지자체를 통해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관리체계를 구축해 지원하기로 했다. 1분기(1~3월) 내에 전체 명단을 확보하고 내년 상반기 중 지원 성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또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폐지 수집 노인에게 더 높은 소득과 안전을 보장할 방침이다. 일대일 조사로 행정복지센터 및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에 연계해 노인 일자리 사업을 설명하고 참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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