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살인 혐의 유죄 판단해 징역 30년 선고
대법원 지난해 7월 "추가 심리 필요" 파기환송
살인 혐의 무죄…컴퓨터 이용 사기 혐의 집유

수원지방법원 청사.
수원지방법원 청사.

[신소희 기자]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편에게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을 탄 음식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던 30대 여성이 파기환송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일 수원고법 형사1부(고법판사 박선준 정현식 배윤경)는 A씨의 살인 등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 B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 흰죽, 찬물 등을 마시도록 해 B씨가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미숫가루와 흰죽을 먹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B씨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그러나 귀가 후인 27일 오전 1시30분~2시 A씨는 B씨에게 한 차례 더 찬물과 흰죽을 건넸고 이를 받아 마신 남편은 오전 3시께 사망했다.

아울러 A씨는 범행 후 B씨의 계좌에 접속해 300만 원 대출을 받아 이득을 취득한 혐의(컴퓨터 등 이용 사기)도 있다.

1심은 A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은 역시 징역 30년을 선고했으나 니코틴 원액이 든 찬물을 통해 B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응급실을 다녀온 뒤 증상이 완화된 피고인이 니코틴을 음용했을 정황은 피고인이 건넨 찬물 한 컵밖에 없다"면서 "피해자의 사망 전 행적을 봐도 평소 일상생활과 다를 바 없어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둔 사람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다시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파기환송심은 ▲범행 준비 및 실행 과정 ▲니코틴을 이용한 살해방법 선택할 이유 ▲피해자의 다른 행위의 개입 가능성 ▲범행동기 등 주요 쟁점들에 대해 다시 심리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피해자의 말초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에 비춰보면 시중의 일반적 액상 니코틴 제품으로는 부족하고 고농도 원액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이 범행을 위해 니코틴 원액을 구입했다고 볼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봤다.

범행방법과 관련해서도 "니코틴은 희석액도 찌르는듯한 자극적인 감각이 느껴져 의식이 뚜렷한 피해자에게 발각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량의 니코틴을 탄 흰죽과 물을 먹게 해 살해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남편은 A씨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살을 시도해 상흔이 남기도 했으며,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보면 전자담배, 자살 등 단어를 검색하기도 했다"며 "배우자의 외도와 경제적 상황 외에도 가족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해자의 불안정한 정서 상태가 심화했을 가능성도 있어 피해자의 다른 행위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보기에도 의문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재산 내역을 보면 피해자의 사망으로 피고인이 얻을 재산이 압도적으로 다액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일정한 소득을 얻어 생활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있었는데 그를 살해해 경제적으로 더 큰 이익을 누렸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범행동기에 있어서도 의문을 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을 탄 죽과 물을 먹게 해 살인이라는 범행을 했다고 보기에 충분히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컴퓨터 등 이용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선고가 이뤄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A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자 가족을 향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쳐다보다 이내 법정을 빠져나갔다.

변호인은 이날 선고 후 취재진에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는데 재판부가 잘 판단한 것 같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피고인을 범인으로 잘못 지정해서 수사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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