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값만 1만 원 넘는데"

[정재원 기자] 고물가 시대에 1만원의 무게감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화폐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다. 초·중학생 조카들 세뱃돈을 주려면 1만 원은 적고, 5만 원은 고민이 된다. 얼굴만 아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5만 원을 내기도 부담스럽다.

고물가에 화폐 가치 하락이 이어지며 새로운 고액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실에서는 실용성이 높은 3만 원권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는데 여기에 10만 원권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2년 회폐시용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10만 원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29.1%로 나타나 2019년(19.7%)에 비해 10%포인트 증가했다. 2만 원권 도입 응답도 14.8%를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조페공사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은행권 디자인 주제 및 시각자료 개발' 용역을 마치고 연구보고서를 비공개로 공시하면서 새권종에 대한 논란이 높아졌다.

조폐공사 측은 5종의 지폐 도안을 요구했는데 시중 사용 지폐는 5만 원권과 1만 원권, 5,000원 권, 1,000원 권 뿐이라는 점에서 3만 원권이나 10만 원권 발행 기대감이 커졌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 권종이 조만간 등장하지 않는다 한다. 조폐공사 측은 "해매다 발주하고 있는 용역으로 사전 대비인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차원"이라며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고액권을 발행하기는 쉽지 않다는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화폐 제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실익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3만원권이 등장하면 전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설비 교체부터 해야하고 홍보비용과 도안 모델 선정에 따른 잡음 등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다.

과거 5만 원권을 도입할 당시에는  2007년 고액 발행 계획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도 2년이 지난 2009년이나 돼서 발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도안 모델도 백범 김구냐 신사임당이냐를 놓고 논란도 컸었다.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신용카드와 삼성페이와 애플페이, 네이버페이 등 비대면 상거래 확대로 화폐사용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화폐 등장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금액은 일평균 8,451억 원으로 직전년 같은 기간보다 16.9% 증가했다.

반기 기준으로 간편결제 8,000억 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이용건수는 13.4% 증가한 2,628만건으로 금액과 건수 모두 2016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며 현금 없는 사회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화폐 발행을 담당하는 한은 역시 3만 원권 발행 계획에 선을 긋는 만큼 새로운 화폐 등장은 한동안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기존 권종에 3만 원권이 새로 생기면 개인의 관리가 어렵고 혼선이 올 수 있는 데다 국가적으로 세금을 많이 들여서 새로운 화폐를 만든다는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만 원짜리도 상당한 고액권으로 10만 원권도 탈세라든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몇십년 뒤에나 검토해 볼 만한 사안으로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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