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보호자로 가득한 병원 대기석...
'수술 늦어질까' 불안

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기자회견에서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총회장의 자료에 의대교수 사직 관련 메모가 적혀 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기자회견에서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총회장의 자료에 의대교수 사직 관련 메모가 적혀 있다.

[신소희 가자] 정부의 의과대학(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사직이 한  달째를 넘긴 가운데 교수들까지 사표를 내면서 대학병원 진료 축소도 예고해서 의료 공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고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될 때까지는 진료하겠다면서도, 외래진료, 수술에 관한 근무 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일 예정이다.

2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대학병원의 수술과 외래진료가 모두 올스톱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토로했다.

전날(24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를 만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미복귀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에 관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과 정원 배정 철회가 없는 한 이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이날 계획대로 교수들의 사직서를 일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사직서를 낸 교수들은 수술과 진료 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줄이고, 내달 1일부터는 외래 진료도 최소화해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시기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시기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오픈 시간 전인 오전 8시30분께부터 교수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로 대기석이 가득 차 있었다.

김강하(72)씨는 "간 이식을 기다리는 중인데 교수들마저 떠난다면 수술이 늦어질 수 있어 불안하다"며 "교수들의 사직은 국민한테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그래도 아직 의사들에게 믿음을 갖고 있다"며 "설마 우리를 버리기까지 하겠나"라고 덧붙였다.

간 이식을 받은 후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5년째 병원을 찾고 있다는 이병록(62)씨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아프면 병원에 갈 뿐이지 의사 수가 몇 명이고 몇 명 모자라고 이런 거는 전혀 모른다"며 "이런 환자들한테 피해가 안 가게 잘해야 하는데 교수들까지 떠난다고 하니 너무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환자들도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상황으로 환자들이 큰 피해를 볼까 걱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이 18일 오후 연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연세 의대 임시 전체 교수 회의가 열리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과대학으로 들어서고 있다. 비대위는 정부의 의대생 유급 조치와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등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이 18일 오후 연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연세 의대 임시 전체 교수 회의가 열리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과대학으로 들어서고 있다. 비대위는 정부의 의대생 유급 조치와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등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다음 달 이비인후과 진료를 위한 교육을 받으러 내원한 50대 김모 씨는 "처방을 비롯해 앞으로 진료 계획 등을 알려주는 분이 바뀌었던데 불안하다"며 "교통사고와 같이 긴급한 환자들도 있는데 교수들까지 파업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장 투석을 받으며 올해로 40년째 세브란스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최모(68)씨는 "오늘 오후 6시에 교수들이 사직한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교수님 중 한 분이라도 남아서 우리를 봐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불안감을 겨우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내부 메일에서 "정부는 객관적인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실된 태도로 협상의 장을 마련하라"며 "보내준 사직서는 일괄 출력해 의대 학장에게 오늘 오후 6시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5년 전 간암 수술을 한 정인식(70)씨도 "혹시라도 교수님 진료를 못 받게 될까 봐 불안하다"며 "어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교수들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겠다고 했는데 잘 돼서 파업이 더 길어지지 않고 잘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12살 딸을 데리고 서울성모병원에 온 40대 김모 씨도 "아이가 골수를 이식받아서 부산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로 올라온다"며 "만약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서 진료를 못 받는다고 하면 이거는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답답해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실무 작업을 거쳐 이른 시일 내에 의료계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의료 공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의 행정처분에 관한 유연한 처리 방안을 당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현재 정부는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달 셋째 주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전체 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환자는 평균 7,152명이다. 그중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환자는 평균 2,941명으로 전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주요 5대 병원 입원환자는 평균 4,761명으로 전주 4,754명과 비슷하다. 전공의가 없는 종합병원 입원환자는 평시인 지난달 첫 주 대비 10.3%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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