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제품 고집한 뚝심의 경영인
장례식장 신촌세브란스병원…다음 달 2일 영결식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2024.3.29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2024.3.29

[신소희 기자] 효성그룹은 조석래(89세)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18시 38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특유의 기술 경영과 함께 1등 제품인 스판덱스를 만든 뚝심 경영으로 지금의 효성그룹을 키운 인물이다.

재계에 따르면, 1935년 경남 함안 출생인 조 명예회장은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를 이끈 인물이다.

1935년 11월 19일 경남 함안 만석꾼 집안의 조홍제 효성 창업자와 하정옥 여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경기고 재학 중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히비야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던 1966년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의 뜻을 받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귀국한 1966년 부친에게 “앞으로 석유화학 산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나일론 사업을 제안하고 동양나이론을 설립해 ‘창업 1.5세대’로 평가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공학도답게 기술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인 대표적인 일화룰 소개하면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을 한창 짓고 있던 1967년, 고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딸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해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 포를리를 선택했다. 당시 이름도 생경했던 포를리를 택한 것은, 동양나이론 기술진이 포를리에서 생산 기술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밤새 기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 뒤  1971년엔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을 알았기에 신사업에 대한 과감한 결단도 가능했을 것이다.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이후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그룹 내 주요 사업을 이끌었다. 섬유 관련 주요 기술을 국산화하며 한국 섬유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일본·미국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고인은 일찍부터 ‘우리만의 기술'을 강조해 효성을 스판덱스 세계 1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려 놓았다. 부친인 고(故) 조홍제 창업자(1948년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과 삼성물산을 세워 운영하다, 1962년 독립해 효성물산을 세움)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82년에 효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건강상의 이유로 2017년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2024.3.29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2024.3.29

재계에선 조 명예회장을 기술 중시 경영인이라고 평가한다. 공학도인 그는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을 기업의 미래라고 봤다. 1971년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다. 이후 산업 각 방면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특히 1등 제품만 고집하는 뚝심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효성의 스판덱스는 기술에 대한 조 명예회장의 집념의 결과물로 불린다. 독자 기술 개발로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가 대표적이다. 

강철보다 6배나 강력하면서 무게는 6분의 1에 불과한 탄소섬유 개발도 선도했다. 차세대 송전망 시스템, 광학용 필름, 친환경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폴리케톤 등도 조 명예회장의 뚝심 경영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조 명예회장은 해외 시장도 적극 개척해 한국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효성 매출의 80%가 해외 시장에서 발생할 정도다. 효성은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 세계에 걸쳐 50여 개 제조 및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조 명예회장이 한미 지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기여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2000년 한미 재계회의를 통해 한미 FTA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다. FTA 체결 이후 미국 의회를 방문해 직접 설득 작업에 나섰다.

조 명예회장은 2007년부터 5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는 등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러 활동을 했다.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재계에선 ‘민간 외교관’으로 불렸다. 경제 발전과 민간 외교 활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 외에도 1982년 체육훈장, 1994년 한국경영자대상, 2000년 미국 일리노이공대(IIT) 국제지도자상 등을 수상했다.

동양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양미래대, 동양고등학교 등을 통해 우수 인재 육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조현문 전 부사장,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다음 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영결식은 다음 달 2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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