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이 금융당국에 자동차 복합할부금융 상품을 없애줄 것을 요청했다가 좌절되자 개별 카드사들을 상대로 벼랑 끝 협상에 나서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일까?

업계에서는 "표면상의 이유는 과도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낮춰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국내 자동차할부금융 시장 패권이 걸린 승부수"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2일 재계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그룹과 KB국민카드는 오는 10일까지 가맹점 계약 만료일을 연장해 가맹점 수수료율 관련 사항을 협의하기로 지난 10월 31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차는 국민카드에 현행 1.85%인 카드 복합할부금융 가맹점 수수료율을 0.7%로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카드는 "1.75% 이하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현대차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0월말로 가맹점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하면서 파국을 맞을 위기에 몰렸다.

계약기간 마지막 날 양측이 열흘간 협상기한을 연장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 혼란은 피했지만 향후 조율이이 제대로 이뤄질 지는 불투명하다.

'복합할부금융'이란 자동차를 살 때 소비자가 신용카드로 자동차 대금을 결제할 경우, 결제액을 할부금융사가 대신 내준 뒤 고객은 할부금융사에 매달 할부금을 내는 상품이다.

카드사들은 이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로부터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고객에게 포인트 적립이나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고 나머지는 할부금융사와 나눠가지게 된다.

현대차는 할부금융사와 자동차 업체가 '직거래'로 할 수 있는 일에 카드사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지난 3월 금융감독당국에 관련 상품 폐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쟁사인 삼성카드와 중소캐피탈사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말 이 상품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다.

◆복합할부금융 폐지 무산되자 개별 카드사 압박

이렇게 되자 현대차는 다른 카드를 꺼냈다. 개별 카드사를 상대로 수수료율을 낮춰달라고 압박하기 시작한 것. 현대차는 금감원 결정이 있은지 두달 뒤인 지난 10월 23일 국민카드에 가맹점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공문을 전격 발송했다.

회사 관계자는 ""두 달 가까이 수수료 재협상을 요청했지만 국민카드는 이를 회피하다 0.1%포인트를 내려주겠다는 협상안을 내놨다"면서 "수수료율 인하 폭이 너무 낮아 수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 복합할부로 완성차 업체들이 지출한 비용은 872억원 규모다. 자동차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비용인 셈이다. 게다가 현대차는 일방적으로 신용카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경우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현대차가 가맹점 해지에 나설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부처가 추가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대차그룹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는 것은 국내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의 점유율 구조를 바꿔보려는 승부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자동차 복합할부금융 시장 규모는 약 4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대카드는 취급액이 1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카드 1조3000억원, 신한카드 6000억원, 롯데카드 4000억원, KB국민카드 2000억원, 우리카드 1000억원 등의 순이다.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41.3%로, 28.2%인 삼성카드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둔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불안한 선두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2013년 하반기들어 현대카드의 복합할부금융 취급액은 월별 기준으로 10분의 1토막이 난 상태다. 삼성과 신한 등 다른 카드사들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현대카드를 이용해 차를 구매하는 고객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현대차 판매 물량의 80%를 독점하던 현대캐피탈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1.3%까지 주저앉았다. 현대캐피탈에서 이탈한 고객들을 JB우리캐피탈과 아주캐피탈이 각각 13.0%의 시장점유율로 나눠가졌고, KB캐피탈과 BS캐피탈 등이 뒤를 쫓고 있다.

반면 수출시장에서는 여전히 현대캐피탈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해외에서 현대자동차가 판매되면 자동으로 할부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자동차 수출 할부금융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현대카드·캐피탈 옛 영광 재현 가능할까

하지만 정작 안방인 국내시장에서는 '캡티브 마켓(계열사 내부시장)'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데다, 금융당국을 통한 '시장 해체' 노력마저 무산되자 모기업인 현대차가 나섰다는 것이 경제계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이번 갈등은 자동차 제조사와 할부금융사간의 문제일 뿐 특정 회사와는 무관하다"면서 "사안의 본질은 사실상 자동차 제조사가 마케팅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시장 왜곡을 바로잡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드업계는 현대차의 이번 행보가 KB카드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가맹정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다른 카드사와의 분쟁이 잇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카드의 경우 현대카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만큼 현대차를 통한 압박의 강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은 자동차 업계와 카드사간의 갈등이 자동차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싸움에서 우위에 있는 현대차가 승리할 경우 소비자에게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만약 가맹점 계약 해지 없이 수수료 인하로 결론이 내려지면 그만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 그룹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분을 가격인하 등으로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카드 가맹점 계약이 대거 해지되거나 현대카드·캐피탈 독점 구조로 바뀔 경우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양측의 이번 갈등은 소비자에게는 양날의 칼"이라면서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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