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장감 감도는 대한항공 본사
불합리한 지배구조는 한국 경제 업그레이드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그 나라의 문화, 경제발전 단계 등에 따라 적절한 지배구조를 정립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지배구조가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효율을 보장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만큼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지배구조든 반드시 갖춰야 할 게 있다. 바로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이다.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지 않으면 지배구조는 조직 운용의 틀로서 유효성을 상실한다.

대한항공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대주주는 자신의 지위를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백지수표'로 간주했다. 권한과 책임에 대한 인식 부족이 전세계적인 조롱거리를 만들었다. 대한항공의 지배구조는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배구조가 부실했기에 '오너(owner) 리스크'가 촉발됐다.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다. 오너 리스크가 기업 리스크로 확대됐다. 해외에서는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말자"는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오너 경영이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 주장했던 '철인정치' 처럼 유능한 오너라면 '오너 경영 체제'가 더 높은 성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처럼 유능한 오너가 많지 않다는데 있다. 무능한 오너 경영인에 의한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문경영인 중심의 지배구조를 대안으로 삼는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너 리스크 대응, 경영 승계를 책임 있게 추진할 회사 내부 기구, 권한·책임 부여 여부나 근거 규정 등을 따로 마련해 놓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대주주 일가가 최고경영진으로서 핵심 경영에 대한 주요 의사 결정을 독점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사회가 주요 경영의사 결정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한 것도 지배구조의 결함 때문으로 지적된다. 우선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사내이사 6인, 사외이사 7인으로 사외이사 구성비율이 53.8%이지만, 사외이사 7인 중 5인이 장기연임, 주요 거래관계, 계열 학교법인 소속 인사 등으로 나타났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이사회 구성의 한계는 오너가 주도하는 오너 리스크 대응 및 경영 승계와 관련해 이사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립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사외이사 선임과 부적절한 이사회 구성은 적극적 기관투자자 부재와 이에 따른 주주총회의 형해화(形骸化)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같은 불합리한 지배구조가 비단 대한항공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많은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경영 승계를 위해 오너 3~4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대주주들이 경영 일선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과 권한의 불일치는 지배구조의 유효성을 제약한다. 이는 곧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 상실을 가져온다.

불합리한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야기한다. 저렴한 비용에 자본을 조달하면 기업의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진다. 결국 지배구조 문제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을 갉아먹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 이사회의 권한 강화를 꼽는다.

이사회가 CEO 추천·선임 등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사회는 독립성을 갖춰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대주주 지분이 절대적으로 높지 않은 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이해가 기업 전체의 이해과 일차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 승계 과정에서 후계자, 특히 대주주 일가에 대해서는 경쟁력과 역량, 자질 등 검증 과정을 엄격하게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경서 기업지배구조원장은 "무분별한 경영 승계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특히 우리나라는 다 망가져야 경영권이 교체되는, 다시 말해 경영권 시장이 경직돼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 중 하나로 경영권이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