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들어 재정 건전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재정은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재정이 안정되면 갑작스런 경제위기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재정 투자를 통해 얼어붙은 민간 부문에 불을 지필 수 있다.

하지만 재정이 건전성을 잃으면 경제 위기가 발생해도 속수무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이들 국가가 재정 건전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는 그 자체로서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카드를 활용했다. 하지만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세수 증가도 예상치를 밑돌자 재정 적자가 이어지면서 나랏빚을 늘리고 있다.

나랏살림(관리재정수지)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014년에도 10월까지 기준으로 25조6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면서 올해도 약 33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도 지난 2008년 300조원 수준에서 2014년에는 527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2008년 28%에서 2014년에는 35%로 늘어났다.

여기에 공공부문 부채를 더하면 나랏빚 규모는 더욱 확대된다. 2013년 기준으로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 부채(D2)'는 565조6000억원으로 늘어났고, GDP 대비 D2 비율은 39.6%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양호한 편이라고 주장한다.

GDP 대비 D2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에스토니아(10%), 룩셈부르크(24%), 멕시코(34%), 노르웨이(34%)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고 D3도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15년 만에 국가채무 비율이 두 배로 늘어났다. 더욱이 "공기업 부채 규모도 만만치 않아 안심할 수 없다"는 반론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우리나라는 공기업(비금융) 부채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1%에 달한다.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 공공부문 부채를 산출하고 있는 일본(11.4%), 포르투갈(3.5%), 캐나다(11.9%), 영국(3.1%), 호주(12.6%), 멕시코(15%) 등은 모두 우리보다 공기업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공기업 부채까지 더한 '공공부문 부채(D3)'는 2013년 기준으로 898조7000억원에 달한다. GDP 공공부문 부채는 비율은 62.9%로 유럽연합(EU)의 가이드라인(60%)을 뛰어넘는다.

재정건전성은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다. 복지 확대에 따라 매년 의무적으로 지출해야하는 예산은 늘어나지만 성장률 둔화 여파로 세수는 크게 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 현행 법률과 제도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2030년 4.1%, 2060년에는 8.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2030년에는 58.0%, 2060년에는 168.9%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의 균형재정 약속은 '경기 활성화'와 같은 단기적인 정책 목표에 밀려 실현되지 않고 있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장기적인 경제성장 기반을 갉아먹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도 출범할 때에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올해 대규모 확장 예산을 편성하면서 임기내 균형재정 달성 계획을 사실상 포기했다.

정부는 현재 임기 마지막 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1.3%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경상 성장률이 매년 6.1%를 기록해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될 경우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미래 세대에 조세 부담을 전가함에 따라 세대간 갈등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에 큰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정치적 판단으로 경기 부양책을 주기적으로 남발해 재정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며 "단기적 경기부양조치가 계속 실패하면 일본식 불황이 아닌 남미국가 형태의 경제파탄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국가채무가 GDP 대비 230% 수준인 일본이 외환 위기를 회피할 수 있는 것은 경제규모가 큰 데다 일본 국민들이 국채를 대부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한국은 경제위기에 대한 방어 기제가 취약한 데다 체력도 상대적으로 약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에서 성장과 복지를 모두 잡으려고 하다보니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복지를 현재 수준보다 늘리려면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복지 수준과 증세 방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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