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최근 국제 유가가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음에도 소비자들은 저유가 시대를 실감치 못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 여전히 ℓ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즐비하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기름값 편차가 커져 일부 지역의 경우 ℓ당 800원 이상 차이가 지금의 현실이다.

소비자들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정부는 이 같은 사태의 원흉으로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로 지목, 책임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주유소가 자력으로 기름값을 낮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오히려 정부가 '고유가 시대'마냥 주유소를 옭죄어 최근의 사태를 풀어가려는 시대착오적인 행정을 지속한다고 비난한다. 일부 주유소들의 이기심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의 실종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1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일보다 0.09달러 내린 47.41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1월 오펙(OPEC)이 감산불가 방침을 발표한 뒤 75달러 선에서 폭락하면서 12월15일 60달러 선이 붕괴된 데 이어 지난 6일 5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도 2.60달러 하락한 48.36달러에 거래되며 2009년 이후 처음으로 40달러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국내 유가 하락이 국내 주유소 실제 판매가로 확대되고 있는지 소비자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주유소의 경우 여전히 ℓ당 2000원이 넘는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 중이다.

지난 8일 서울시 관악구 기준 휘발유 최고가격은 ℓ당 2298원. 반면 같은 지역 최저가격은 1539원으로 759원이나 차이가 난다. 서울 일부 지역의 경우 편차가 더욱 커, 휘발유 최고-최저가격이 ℓ당 최대 862원까지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종도 가리지 않는다. 서울 구로구의 경우 경유가 최고가격(1995원)과 최저가(1299원) 사이에 696원의 차이를 보였다. 서울 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대구 동구 역시 주유소별 최고가격(2138원)과 최저가격(1474원)이 ℓ당 664원 차이가 나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 중 가격차가 가장 컸다. 또 인천 남동구는 경유의 최고(1798원)-최저(1247원) 가격의 차이가 551원까지 벌어졌다.

올해 1월1주차 전국 휘발유 평균가가 1568.7원(석유공사 자료)인 것을 감안하면 지역에 따라 최대 50% 가깝게 비싸다는 얘기. 이 때문에 주유소 업계는 지나친 폭리를 취하는 '원흉'으로 지목된 상태다.

업계는 일부 주유소가 저유가 사태에도 판매가격 인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서울 시내 주유소나 아예 시 외곽에 있는 주유소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유소 밀집도가 적어 경쟁이 적은 편. 업계 관계자는 "중구, 종로, 용산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주유소 숫자가 적어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자유로운 편"이라며 "이들 지역은 평균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주유소 업자의 이기심이 주유소 판매가격 '요지부동'에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다.

일단 주유소 업계는 업자가 판매가격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고 항변한다.

업계에 따르면 주유소의 평균 마진율은 5%대. 휘발유 ℓ당 붙는 세금이 56.6%이고, 정유사 공급가 32.4%까지 총 89.0%을 제하고 난 11.0%에서 유통비용까지 뺀 금액이 주유소 업체들에게 돌아간다.

유류세와 정유사 공급가를 뺀 나머지에서 판매마진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주유소의 인하 여력은 크지 않다는 설명.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유류세, 정유사 공급가격은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주유소에서 판매가 인하 여력은 아무리 크게 봐도 3%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가격 편차는 주유소마다 가진 고유의 영업권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주유소에서 기름값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크게 ▲지가 ▲인건비 ▲영업전략 등 3가지.

주유소는 지가(임대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컨대 시내 중심가에 있는 주유소와 주택가 인근에 있는 주유소는 같은 행정구역 내에 있더라도 동일선상에서 판매가격을 논할 수 없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의 직영 주유소를 제외한 대부분이 부지를 임대하기 때문에 주유소 유지비 중 임대료의 비중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유소를 방문하는 고객수에 따라 직원수의 차이도 있다. 직원수가 많을수록 판매가 인하 여력은 자연 감소할 수밖에 없다.

주유소별로 영업전략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업계에서는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 업체는 기름값을 낮춰 세차나 차량 정비 등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박리다매형 전략이라면 다른 업체는 기름값을 낮추지 않고 대신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주유소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같은 지역이라도 단순 비교불가하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주유소 업계 전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주유소는 입지, 인건비, 지역총판 납품가 등이 유사함에도 가격차가 벌어질 이유가 없다는 게 산업부의 입장. 산업부 관계자는 "판매여건이 거의 같은 동일 지역 내에서도 주유소별 가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추가적인 가격 인하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알뜰주유소 확대,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경쟁촉진을 통해 주유소 업계에 기름값 인하를 요구할 계획이다. 또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지난해 3월부터 7대 광역시내 구 단위로 휘발유·경유·등유·LPG 가격이 비싼 주유소와 싼 주유소의 가격 동향을 매주 발표, 주유소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기름값을 둘러싼 정부-주유소간 팽팽한 줄다리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주유소 업계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유류세부터 낮추라고 말한다. 최근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유통비용을 아무리 줄여도 휘발유값이 ℓ당 1300원대 이하로 내려가긴 힘들다. 유류세가 내려야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고 밝혀 유류세 인하 없이는 판매가 인하도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오히려 업계는 산업부의 탁상행정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 주유소,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그동안 주유소 업계를 압박해 수익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고유가 시대 정부의 유가 정책"이라며 "저유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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