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사고 당시 학생 구조를 도운 의인 김동수(50)씨가 2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안산트라우마센터로 떠나기 전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아무 쓸 모 없는 손이기 때문에 없애버리려고 했다”

“손이 자기 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 고통은 본인 밖에 모른다. 병원 가도 약만 줄뿐이다”

“국가는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 국가는 말 뿐이다. 집을 빌릴 수 있는 대출금도 준다고 했지만 진전된 게 없다”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자해를 시도한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씨는 지난 19일 오후 8시 43분께 제주시 조천읍 자택에서 흉기로 자해를 했다가 가족에게 발견됐다.김 씨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 뒤 한 시간 후 귀가했다.

2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안산트라우마센터로 떠나기 전 취재진들과 만난 김 씨는 “지금 생활이 다 끊겨 아내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고3인 딸은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고 알바를 하겠다”고 한다“며 ”정부 지원도 끊겨 대출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씨는 “그동안 제주도에 세월호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도 해봤다. 제주에서 받고 있는 치료는 7월에 모두 끝나고 그곳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라며 "세월호 특별법도 생존자는 뒷전"이라고 정부와 제주도 행정당국의 무관심에 서운함도 내비쳤다.

정부에 대한 김 씨의 불신을 토로했다.

그는 “해경이 선장이 죄인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묻길래 모두 죄인이라고 했더니 안 좋은 표정으로 보더라”라며 “국회도 가고 편지도 써봤지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다 보상 받고 고통에서 빠져나온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며 "학생들을 볼 때마다 (희생된) 아이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선내에 있던 화물차 기사 김씨는 소방호스 등을 이용해 학생 20여명의 구조를 도와 이른바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사고 때 생계수단인 화물차가 배와 함께 침몰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 씨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에는 '잊지말아요'라고 써진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