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원, 해외자원개발 사업 성과분석 감사 관련 브리핑
{김민호 기자]정부가 2003년 이후 해외자원개발사업에서 31조원을 투자했지만 회수한 돈은 현재까지 고작 4조6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앞으로 34조원의 돈이 더 투입돼야 하지만 공기업들의 무리한 투자와 부실한 사업관리로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것으로 전망됐다.

나아가 차입 위주의 투자금 조달로 인한 공기업들의 유동성 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3일 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 감사 관련 브리핑을 열어 "지금까지의 투자금액과 향후 계획, 재원조달 가능성 등을 정리해 본 결과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34조3000억원 추가 투자…'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16조9000억원)와 한국가스공사(10조6000억원), 한국광물자원공사(3조9000억원) 등 3개 공기업이 2003년 이후 116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투입한 돈은 31조4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묻지마식' 자원외교로 문제가 된 이명박(MB) 정부 때 투자된 금액이 컸는데 총 27조원으로 노무현 정부의 투자액(3조3000억원)의 8.2배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회수된 금액은 석유공사 2조8000억원, 가스공사 1조6000억원, 광물자원공사 2000억원 등 고작 4조6000억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 석유공사 15조3000억원, 가스공사 17조9000억원, 광물자원공사 1조1000억원 등 34조3000억원에 달하는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추가 투입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20조원은 2018년까지 집중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막대한 투자규모에 따른 자금조달 문제도 우려된다.

김 총장은 "각 공사에서는 해외사업 투자비를 장기적으로 회수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초기에 비싸게 산 데다 현금흐름이 당초 기대한 것과는 상당수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서 투자금 회수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실제 감사원이 그동안 감사를 벌인 12개 해외자원개발사업(15조2000억원 규모)에서 기대매장량이나 수익률을 부풀리는 등 경제성을 과다평가해 1조2000억원을 고가 매수한 사실이 적발됐다.

또 유가하락과 탐사실패, 사업철수 등으로 인해 3개 공기업은 이미 19개 사업에서 3조4100여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 책임경영 부족…졸속 투자 난무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졸속으로 추진된 데는 공기업의 책임경영 능력 부족이 한 몫 했다. 김 총장은 "공기업은 합리적인 경영판단보다는 정부의 영향이나 임기가 한정돼 있는 공기업 사장의 성과목표 달성에 대한 무리한 욕심이 개입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수합병(M&A) 성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하베스트(Harvest Trust Energy)사의 정유부문 계열사(NARL)까지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1조3300억원을 날린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이다.

석유공사의 카자흐스탄 석유기업 숨베 인수, 가스공사의 캐나다 웨스트컷뱅크 광구 매수 등도 손실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정부 목표치 달성이나 사장의 매입방침에 따르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유리하게 조작한 사례라고 감사원은 전했다.

공기업들이 합리적인 판단 대신 기존 투자비용에만 연연한 탓에 부실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석유공사)이나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투자(광물자원공사) 등은 경제성이 낮다며 이탈한 다른 참여사들의 지분까지 매입하는 바람에 투자비가 대폭 증가한 사례다.

김 총장은 또 "해외자원개발은 장기간 사업이기 때문에 투자 후에 지속적인 재평가를 통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그러나 구조조정을 내버려뒀다가 공기업 부채감축 대책 때문에 한꺼번에 매각하다보니 상당히 무리한 결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맞추려다 보니 추가 투자 후 지분 일부를 매각한다거나 최소한 투자비 이상으로 매각한다는 등의 비현실적 구조조정 계획이 수립됐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의 경우 석유공사는 그동안 3538억원을 투자하고도 앞으로 2조9249억원을 더 투자한 뒤 지분 일부를 3700억원에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카스 가스전은 현재 이슬람국가(IS)에 점령당해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광물자원공사는 3405억원을 투자한 파나마 꼬브레 구리광산을 4179억원에 매각하려 했지만 광물가격 하락 우려로 인해 2차례 유찰됐다.

◇차입에 의존한 재무조달…유동성 위기 우려

부실한 자원개발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기업이 충분한 투자재원 없이 차입 위주의 자금조달에 의존하고 있는 탓에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김 총장은 "근본적 문제는 (지금까지 조달한) 31조원의 재원 대부분이 차입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자금 상환이 상당히 도래하고 있어 현재도 유동성이 불안정한 상황인데 앞으로 34조원 이상의 추가투자 금액도 결국은 차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3개 공기업의 영업이익 등을 고려할 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싶은 사업은 중단하고 좋은 사업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나아가야 할 상황인데 이를 위한 체계적인 검토가 안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석유공사(1조42억원)와 가스공사(2조8924억원), 광물자원공사(1조3808억원)에서 당장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은 무려 5조2774억원에 달한다.

이를 포함해 2019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규모는 석유공사 6조9934억원, 가스공사 13조1789억원, 광물자원공사 2조5107억원 등이다.

이 같은 막대한 차입금 상환과 34조원의 추가 투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회사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해외 신용평가사의 투자등급 하향 경고로 인해 투자부적격 판정을 받을 경우 오히려 이자비용만 급증할 우려가 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정부재정능력까지 반영된 '종합신용등급'은 3개 공기업 모두 무디스와 S&P에서 투자적격 등급을 받았지만 '독자신용등급'의 경우 지난 5년간 석유공사는 5단계(무디스), 가스공사는 3단계(S&P), 광물자원공사는 11단계(무디스)씩 떨어져 투자부적격으로 분류된다.

2008년 이후 3개 공기업의 부채규모나 부채비율도 크게 증가한 상태다. 이 기간 석유공사는 5조5000억원(73%)에서 18조5000억원(221%)으로, 가스공사는 17조9000억원(436%)에서 37조원(389%)으로, 광물자원공사는 5000억원(85%)에서 4조원(219%)으로 눈덩이처럼 빚이 불었다.

따라서 각 공사가 마련 중인 자금상환과 추가 투자재원 확충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나아가 사업 초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면 회수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특성과 최근 유가 및 광물가격 하락 등을 고려할 때 유동성 위기까지 우려된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전문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사업전망부터 사업추진체계, 사업 방식 등을 종합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사업별 성과분석 후에는 기존 자산에 대한 매각이나 추가투자 등 구조조정 방안, 공기업과 민간간 역할 분담 방안, 사업 주체의 민간 이양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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