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소문이 무성했던 한전 전기공사 입찰비리의 전모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무려 133건·공사 계약금액만 2709억이 불법낙찰로 이뤄진 것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과 관련된 입찰비리 행태가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감독기관인 한전은 해당 사실 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등 관리에 맹점을 드러냈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신봉수)는 21일 한전 전기공사 입찰비리와 관련, 입찰자료를 조작한 한전KDN 파견업체 직원(입찰조작책) 4명과 알선 브로커 2명을 구속기소(배임수재·특가법상 사기 등)하는 한편 하위 알선 브로커와 공사업자 등 21명을 추가 입건(17명 구속기소·3명 불구속기소·1명 수배)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구소기소된 입찰 조작책 4명은 2005년 9월께부터 2014년 11월께까지 한전KDN 전산입찰시스템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법 낙찰을 주도, 지난 10년 간 공사업자들로부터 8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회사 밖에서도 입찰 자료를 들여다보고 복수예가 순열, 추첨번호 등을 조작해 단 1원의 오차도 없이 낙찰하한가를 계산, 변경할 수 있는 불법 악성코드를 만들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알선브로커들은 같은 기간 불법 낙찰에 참여할 공사업체를 모집하는가 하면 낙찰 대가로 받은 금품을 조작책 등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광주·전남 지역 뿐만 아니라 인천·대구·경기·충남 등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 총 133건(계약금액 2709억원·수금액 1993억원)을 불법 낙찰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입찰조작책, 알선브로커, 공사업자 등이 얻은 불법이익(입찰조작책 83억원·알선브로커 53억원)이 수금액의 20∼30%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전KDN은 발전에서부터 송·변전, 배전,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력계통 전 과정에 있어 첨단 전력IT 기술을 적용해 전력 계통 감시 및 제어, 전력사업 정보관리 등의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다.

◇ 시스템 허점 파고든 범행

검찰은 한전 입찰계약공사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내부자의 도적적 해이와 알선브로커, 불법 하도급업자의 결탁이 맞물려 발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입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으며, 국민의 생활안전과 직결된 전기공사의 부실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안전과 직결된 한전공사의 경우 기술력이 검증되고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춘 전문업체에 의해 적정 공사비로 시공돼야 한다고 검찰은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입찰시스템, 검증체계를 갖춘 실질적 적격 심사, 불법 하도급 차단 등의 공사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전 입찰·계약시스템은 외부에서의 시스템 침입을 통한 입찰 자료 조작을 차단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입찰 시스템에 비중을 둔 나머지 형식적 서류상 적격심사, 소홀한 공사관리·감독으로 부실업체와 불법 하도급 업체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허점을 알고 있는 입찰조작책들이 외부에서 시스템을 장악, 입찰자료를 조작하기만 하면 해당 정보를 팔아 큰 돈을 벌수 있다고 판단, 범행을 실행했다고 말했다.

◇ '클린피드백' 시스템 도입

한전 전기공사는 큰 공사 규모, 높은 마진율, 1∼2년 간의 안정적 수익 확보 등으로 인해 입찰경쟁률이 최대 5763대 1에 달한다고 검찰은 밝혔다.

입찰조작책들에 의해 조작된 낙찰하한가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춘 알선브로커들을 통해 공사업자들에게 팔려 나갔다.

해당 정보를 이용해 낙찰받은 공사업자들은 대다수 공사를 계약금액의 20∼30%만을 받고 불법하도급이나 부실하청 업체를 통해 공사를 진행토록 했다.

광주지검은 이 같은 사례의 재발방지를 위해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클린피드백 시스템'을 지역 최초로 도입했다.

'클린피드백 시스템'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을 관련 기관과 공유해 부패 유발 관행을 단절하는 제도이다.

검찰은 또 진행중인 불법낙찰 공사 45건을 취소토록 하는 한편 불법낙찰자에 대한 입찰 자격을 제한했다.

광주지검 김희준 차장검사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부조리를 찾아내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과 KDN은 비록 이번 사건에 소속 직원이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전산입찰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있어 관리 책임을 통감하고, 자체감사를 통해 관리책임자 및 담당자에 대한 엄중 문책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또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시행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불법 낙찰 연루가 확인된 8개 업체, 15개 공사건에 대해 계약무효 조치를 완료했으며 수사결과에 따라 범죄사실이 추가로 확인된 업체에 대해서도 조속한 시일 내 계약을 무효 조치하는 한편 한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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