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니 쉬웠던 일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한다. 지금 할 일은 지금 하기 쉬운 일을,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버리는 것이다. 할 수 없는 때가 다가오기 전에."(16쪽)

"'보온병이 보온만 잘 되면 되죠'라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가지고 다닐 내 모습을 상상하며 보온병을 골랐다. 어쩌면 우리 삶에 벌어지는 선택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핵심은 따로 있는데 주변 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원래의 목적이 중요한데 자꾸만 부차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 그것이 사람일 때는 더욱 바깥 것, 외부적인 조건에 집중하게 되는 게 아이러니다."(124쪽)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을 통해 스테디셀러 작가로 등극한 이애경이 '(문득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나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를 냈다.

이 책은 누구나 겪는 일상의 일들에 대한 상념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은 에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랑을 반복한다는 것, 이별을 견딘다는 것, 미래를 기대하는 것 등 우리 머릿속과 가슴 속에 있는 '오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조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의 순간들 중에서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며 '내가 겪어봤더니 이렇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것이 전부다.

"네가 사람을 사랑하는 데 서툰 사람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와 만나고 너와 헤어지고 너와 다시 만나고 너와 다시 헤어지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깨달았다. 네가 사람을 사랑하는 데 서툴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사랑이 서툰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오래 걸렸다. 그 때 알았다면 처음부터 알았다면 잘 하는 척 하지 않았을 텐데. 잘 아는 척 하지 않았을 텐데."(165쪽)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의 인생에 비해 확연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스무살 시절에야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패기와 포부가 있었고 뭔가 '드러나 보이는'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것이 이뤄지지 않은 지금, 세상의 변화보다는 내 울타리 안의 세상을 잘 유지해가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258쪽)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지만, 특정시기에 요구되는 과업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지' '직장에 들어가면 내 밥벌이는 하게 됐네'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면 편안해지겠지' '결혼을 하면 안정되고 행복해지겠지' 등의 생각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매 순간 일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했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를 어디 쯤에 두고 온 것은 아닌가?' 등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은 마음 속의 방황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또 시간에 떠밀려 사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내 뜻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뭔가 인생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어딘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건 여전하다.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내가 어른이 되는 지점을 지났다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뭔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마냥 서툴기만 한 모습이 내 안에 계속 맴돌고 있다. 마치 신발 끈이 풀어져 잠시 멈춰선 여행자처럼. 그래도 괜찮다"며 "그 누구도 정답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누구나 마음 어디에는 작은 아이 하나를 간직하고 살아가니까"라고 덧붙였다. 332쪽, 1만3000원,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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