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는 지금, 일본은 가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빠를 부탁해'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단란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브라운관 밖은 심각하다.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게는 가정불화로 인한 문제에서 돈에서 비롯되는 가정 해체 사건들, 심각하게는 가정 내 폭력과 살인 사건까지 보도된다. 특히 가족 동반 자살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병리학적 현상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병'을 쓴 시모주 아키코는 여러 계기로 인해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혈육, 오빠까지 죽고 나서야 자신이 가족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가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친한 친구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기억하면서 부모나 형제의 기호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한 몸처럼 생각하고 서로에게 이해를 바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 상처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날 불화로,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모주는 개인사 뿐만 아니라 저명인사, 친구 등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또 실제 독자들이 겪고 있는 가족 내 문제점들을 사례로 들어 가족이라는 병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단 '단란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가볍게 쓰인 꼭지들은 '우리 가족만 이런 건 아니었어'라는 묘한 위로와 함께 앞으로 가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준다. 김난주 옮김, 236쪽, 1만3800원,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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