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 총괄 회장
[이미영 기자]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94·사진>은 타지였던 일본에서 지금의 롯데그룹을 일군 창업주다.

신격호는 1921년 음력 10월 4일에 울산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 사이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진수는 재력이 있었으나 신격호의 친척에 의하면 "신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 자랑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그가 태어난 울주군 삼동면은 영산 신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유학과 일본 출국

1940년에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1941년 사촌형이 마련해 준 노잣돈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본명은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

그는 이 과정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던 중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를 만난다. 하나미쓰는 젊은 신격호 명예회장을 높게 평가해 사업자금으로 5만엔을 빌려준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 돈으로 1944년 도쿄(東京) 인근에 윤활유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공장은 미군의 폭격을 받아 가동도 못 하고 불타 버린다. 5만엔은 고스란히 신격호 명예회장의 빚으로 남는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한국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일본에 가기로 결심하고 부관연락선의 밀항선으로 몸을 싣는다.그는 이때만 해도 온갖 일로 생활을 꾸려가며 작가 지망생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 껌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배고픔이 먼저였던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기업 활동

1948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해에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하였으며 1959년 롯데 상사, 1961년 롯데 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되었다.

아버지 신진수는 1968년경 고향을 떠나 1973년 작고할 때까지 서울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1969년 사이 울산국가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암댐(69년 12월 준공)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수몰, 신씨 일가 40여 가구가 이주하면서 대부분 흩어졌고 이때 신격호 역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마을이 수몰되자 그의 친ㆍ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이를 아쉬워한 신격호는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이후 그는 매년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 잔치를 열었다.

그 뒤 일본에서 계속 기업 활동을 하며 유통업 외에도 다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 1969년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의 도쿄 오리온스 구단을 보유하고 있던 나가타 마사이치 구단주의 요청에 따라 롯데와의 업무 제휴 관계를 체결하며 롯데 오리온스로 개칭했다,

1970년 롯데 회관을 설립, 그 뒤 1970년에 나가타는 롯데의 구단주를 사임, 1971년에는 나가타가 전직 총리 기시 노부스케(나가타의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나카무라 나가요시(기시 前 총리의 비서관)를 구단주로 취임시켰으나, 나카무라는 그 해 시즌 이후에 니시테쓰 라이온스를 동시에 구매하다가 한 사람이 두 구단의 소유주가 될 수 없다는 일본 프로 야구의 규정 때문에 롯데의 주주를 구단에 바로 반납하며 롯데의 구단주를 사임하였고, 1972년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롯데 오리온스를 인수해서 현재까지 3대 구단주로 취임하며 재직하고 있다.

1991년 11월(1992년)부터 그의 차남 신동빈이 지바 롯데 마린스라는 구단명으로 개칭하였다. 1972년 롯데리아, 1978년 롯데 리스 등을 세웠다. 또한 전자 쪽으로도 진출하여 1971년 롯데전자를 세우고 1985년 롯데 데이타 센타, 1987년 롯데 엔지니어링 등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으며 일본의 10대 재벌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진출

신 회장은 1966년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사업을 국내로 확장해 1966년 롯데알미늄을, 1967년 롯데 제과를 설립했다. 1973년 호텔 롯데·롯데 전자·롯데 기공, 1974년 롯데 산업·롯데 상사·롯데 칠성 음료 등을 세웠다.

1978년과 1979년에는 평화건업사와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해 지금의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컬로 키웠다. 이후에도 1979년 롯데 쇼핑, 1980년 한국 후지 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또한 1978년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건설하였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런 고속 성장 덕에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2011년부터는 롯데그룹 총괄회장 자리에서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6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달러로 세계 136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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