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 4·13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천권을 두고 비박계 좌장인 김 대표와 친박계를 등에 업고 공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정면충돌하면서다.

이에 따라 김 대표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반기를 들었다가 얼마 안 있어 회군한다는 의미의 ‘김무성의 30시간 법칙’이라는 풍자적 표현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한 입장 발표나 최고위 소집 취소 등 그간의 소극적 방식으로는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김 대표가 이 시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버스가 지난 뒤 손 흔드는 격”이라며 “전날 연 기자간담회도 최소한의 문제제기와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했다”고 평가 절하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방식으로는 안 된다. 김 대표가 끝까지 공천위 결정을 의결하지 않는다든지 김 대표 측 공관위원들이 사퇴하는 등의 배수진을 치는 등의 강수를 둬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의 반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4.13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현역의원들이 탈당 혹은 무소속 출마 의지를 밝히고 있고 생존에 성공한 이들도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불신을 표하고 나섰다. 특히 공천결과를 뒤집기 위한 의원총회 소집 요구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서울 양천을) 의원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새누리당 공천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했다"라면서 의원총회 소집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새누리당이 공당인 바에야 공당의 기둥인 당헌당규를 철저하게 무시한 공천은 원천무효"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요구한다, 당헌당규가 아닌 정무적 판단과 자의적 기준으로 잘못 결정한 지역의 공천결과를 철회해야 한다"라면서 "김무성 당대표도 당헌당규를 수호하기 위해 잘못 결정된 공천결과를 결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헌당규를 위반한 공천을 바로잡고, 새누리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의원총회 소집 요구 등 동지들의 뜻을 모아나가겠다"라면서 "두려운 것은 오직 국민 뿐이고 믿을 것 또한 오직 국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황에 대해 집단행동으로 갈 수도 있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실제로 김 의원은 기자회견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선거는 진다"라면서 일부 지역에 대한 공천결과 철회를 요구했다. 김 의원은 "특히 서울에서 정말로 출중하고 훌륭한 후보들이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서울시민들의 심판도 받지 못한 채 고배를 마시게 될 것"이라며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이런 중대한 사태를 묵과할 수 없어서 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번 '비박 학살 공천'으로 인해 수도권 내 여론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의 주중 집계 결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보다 불과 2.7%p 앞선 36.5%를 기록했다.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 전체의 지지율을 합쳤을 땐 17.0%p 뒤진 결과였다.(조사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8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무선 전화 임의 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사실 '비박 학살 공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김 의원만이 아니다. 이미 정태근(서울 성북을) 전 의원과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의원도 지난 15일 공관위의 7차 공천 발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블로그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라며 "축하와 승리에 대한 기대의 인사가 넘쳐났던 엊그제와 달리 오늘은 우려, 심지어 경멸에 가까운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라고 '비박 학살 공천'에 대한 역풍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상대정당을 이기기 위해 물갈이를 해야지, 당내 반대 계파를 응징하기 위해 물갈이를 하는 것은 '낡은 정치'라면서 "상대당을 지지하거나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는 물갈이를 못할망정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조차 화를 돋우어 떠나도록 만드는 물갈이는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이고 '자해정치'"라고 지적했다.

정두언 의원도 같은 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선거 전략으로 활용해야할 공천을 내부 권력 투쟁의 장으로 써버렸다"라면서 "친박을 포함해 모두가 패배자가 될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진영(서울 용산구)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의사를 밝혔다. 아직 무소속 출마 여부는 밝히지 않았지만 3선 중진인 그가 먼저 깃발을 세운다면 낙천한 비박 인사들의 무더기 탈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공천 탈락한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양·창녕)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지금 공천결과는 결국 살생부를 가지고 와서 공천관리위원장이 그대로 집행한 것밖에 안 된다"라면서 "(지역구에서) '굴복하면 안 된다', '무릎 꿇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조금 더 말씀을 들어보고 조만간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즉 탈당 및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는 이른바 '비박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잘못된 공천, 잘못된 정당을 바로잡고 잘못된 국정운영을 바로 세워야 된다는 이런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분들은 뜻을 모으고 힘을 하나로 모아야 국민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라면서도 긍정적으로 말했다.

이미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임태희(경기 성남분당을) 전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거나 경쟁이 된다거나, 또 자신들이 꼭 앉혀야 할 조직원들을 앉히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배제하는 이런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공관위를 비판했다.

또 "우리 당을 아끼는 지지자들도 당의 이런 행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회초리를 드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안타깝다"라며 역풍을 예고했다.

선거가 이대로 진행돼 선거후 비박계가 20명도 안 남는 상황에서 과연 ‘무대’가 이번 공천과 관련, 어떤 수를 둘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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