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여성은 누구였을까?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카메라를 갖고 와서 강화도와 탈취한 조선 군기(軍旗) 등을 촬영했다. 이는 현존하는 조선에 관한 최초의 사진들이지만, 그 곳에는 조선 여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1883년 서울에 사진관이 생겼다고 하나, 당시 촬영된 사진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 계손향,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선 조선 여인
현존하는 사진을 통해서 볼 때, 조선의 여인을 최초로 촬영한 인물은 퍼시벌 로웰(1855~1916)이라는 미국인이 아닐까한다. 명문가의 자제인 그는 하버드 대학 졸업 후,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방랑벽과 여성편력증이 있었던 그는 일본 여행 중에 마침 미국 방문을 위해 일본에 들른 보빙사 일행을 만나게 된다.

통역 겸 비서로 채용된 로웰은 1883년 8월부터 12월20일 보빙사 일행이 귀국할 때까지 수행했으며, 이후 1884년 3월18일까지 약 3개월 간 조선에 체류했다. 이는 보빙사의 성공적인 외교활동에 대한 조선 정부의 보답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조선을 위해서, 아니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해서 행운이었다.

행운? 그렇다. 로웰은 1885년 말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집필했는데, 이 책은 서양인이 기록한 우리나라에 관한 최상의 기행문학의 하나인 동시에 매우 귀중한 사진들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종을 알현했을 뿐 아니라, 최초로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조선의 여인을 최초로 촬영했으며, 그녀와의 로맨스도 기록으로 남겼다.

훤칠하고 잘 생긴 외모의 로웰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여성에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책에는 세검정 계곡에서 빨래하는 처녀에게 홀딱 반한 구절이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했으나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집에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로웰이 “조선에서 본 최고의 미인”이라고 평가한 그녀는 끝내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런데 로웰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선의 여인이 또 있었다. ‘계손향’(溪蓀香 Fragrant Iris 향기로운 붓꽃)이라는 이름의 기생이었다. 그녀를 몇 번 만났던 로웰은 화계사에서 연희(演戱)를 즐기며 2박3일간 머물 때의 로맨스를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나는 연회에서 만난 기생들과도 꽤 친하게 지냈는데, 계손향이라는 여인이 특히 친절했다. 그녀는 호랑이처럼 사나워 보이는 내게 처음부터 다정히 대해줬던 유일한 여성이다. 화계사에서 내 옆에 앉아 일본어 단어 몇 개를 동원해서 서툴게 조잘대는 그녀를 나는 마음의 언어로 이해했으며, 가슴 뭉클한 정을 느꼈다. 정말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나의 두 눈이 은비녀로 쪽 진 그녀의 새까만 머리털 위를 배회하다가 그녀 얼굴에 꽂혔다. 나를 향해 미소 짓는 예쁜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수천 마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위의 책 369~370쪽)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실린 말을 탄 계손향의 사진을 보기로 하자.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섰던 조선의 여인은 클로즈업되지 않았지만, 갸름한 얼굴의 현대적 미인처럼 보인다. 로웰의 책은 당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계손향 사진을 표지로 했더라면, 책이 잘 팔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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