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 사정 작업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의 1호 타깃은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척결하려 했던 방산비리다. 박근혜 정부는 방산비리를 때려잡겠다고 방산비리 합수단까지 만들어서 대대적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수사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 유리한 것들에만 메스를 들이댔다.

21일 뉴시스는 특히 2014년 당시 검찰이 한창 진행 중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 경영진의 횡령·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은 애초 경찰이 범죄 혐의를 훨씬 먼저 인지해 수사를 벌였던 사안으로 확인되면서 정권의 개입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후안무치한 행각들은 그 중심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있었다고  21일 선데이저널이 전했다 . 특히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리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 선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수차례 제기했는데, 이번 정권의 첫 타깃도 결국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한국 측 주체인 KAI가 됐다.

특히 방사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가 청장으로 있었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최측근이 핵심보직에 있는 등 방산비리의 숙주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수사는 이미 구속된 박 전 대통령 이외에 지난 정권에서 검찰과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 전 수석과 김관진 전 실장을 최종 종착역으로 정해놓고 달려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가 들이닥친 곳은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다. 검찰 관계자는 “2015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새로운 비리 혐의도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카이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등 국산 항공 군사 장비를 개발한 국내 대표적인 방산업체다. 감사원은 KAI가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연구 용역비 등 원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담당 직원 2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후에도 감사원은 KAI의 ‘원가 부풀리기’가 다른 제품에도 적용됐다고 보고 검찰에 관련자들을 추가로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KAI가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KAI는 감사원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KAI 관계자는 “정부와 민간에서 용역 인건비 수준을 보는 기준에 차이가 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카이는 용역 인건비를 민간 기준인 5000만원으로 계산해 지급했는데 감사원은 3000만원으로 판단하고 차액인 2000만원을 과다 책정했다며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카이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관련해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은 KAI의 로비 의혹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의 비상금을 조성하고, 제품이 선정되고 납품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카이가 3년 동안 구입한 36억원어치 상품권의 사용 내역이 주요 수사 대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핵심 관계자, 정부 고위층 등이 로비 대상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카이 관계자는 “명절마다 3000여 명의 직원에게 상품권을 주는 데 연간 12억원이 쓰인다”고 해명했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은 지난 정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화제를 모았던 장명진 전 방위사업청장과 하성용 KAI 사장이 동시에 수사 사정권에 들었다는 점이다. 장 전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으로 대학시절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14년 방사청장에 임명됐다.

검찰은 수리온이 규격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12월 전력화 재개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해 장 청장의 책임이 있다고 본 감사원 감사결과도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혹들은 이미 지난 정권에서도 제기되었으나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일례로 검찰은 KAI의 재무를 담당한 차장급 간부 S씨가 최소 100억원 이상의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했다. 그런데 이 S씨는 지난해 6월 범죄 혐의가 드러나 수사팀의 소환통보를 받은 뒤 잠적했다.

검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쫓고 있으나 1년이 넘도록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현재 S씨 검거를 위한 전담반까지 꾸려진 상태다. 검찰은 S씨의 도주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1년 넘게 핵심 피의자를 잡지 못한 것은 검찰이 사실상 수사의지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제 카이가 해외 수출사업을 통해 수년간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검찰의 칼끝은 전 정권 실세로 향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정권 차원의 비호 없이는 이 같은 일들이 수년에 걸쳐 벌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일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수리온 헬기의 결함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1년 가까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금까지 검찰이 보여 온 움직임은 이번 수사가 ‘카이 내부 비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압수 수색에 동원한 인력만 100여 명이다. 검사와 수사관이 버스 여러 대에 나눠 타고 일제히 움직였. 동원된 인력만 봐도 향후 전개될 수사의 폭이나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초대형 게이트의 전운이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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