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수 창업경영아카데미 대표
1972년 10월.

우리는 민족의 영영한 빛을 보았다.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일생일대의 갈림길인 고입에 매진하여야 할 16세의 하찮은 우리에게 선생님들께서는 진학 지도고 뭐고 다 팽개치(시)고 각 동네별로 구역을 정하(시)어 친히 이장님들을 찾아 댕기(시)며(=다니시며) 홍보 하시기에 바쁘셨고, 또한 문교부께서는 친절하게도 고입 시험 중 사회 과목에 나오는 헌법 및 법률 문제는 구 헌법, 구 법률에서 출제하(시)기로 하시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무 짝에도 필요없는 죽은 법률을 죽어라고 공부했고, 까무러치게 시험을 치렀고, 고사장에서 나오자 마자 잊기에 바빴다.

아! 이 소비자 지향의 정책이여! (영원하라......)

이 위대한 소비자 지향의 정책 덕분에 우리의 청소년기는 속절없이, 가이없이 지나가고 어찌어찌 하다 1974년도에 월남이 패망하고는 우리는 다시 교련의 그 치열한 몸사림(?)을 겪게 되었다.

편법성에 이은 편협적 당위성을 가진 소비자 지향 정책에 우리는 또 다시 그 위대함을 노래하며 청년기를 마잤다.

그나마 머리 굵은 몇몇이 있어 왜 그래? 한마디 하고 녹화사업에 끌려 갔고, 뭐야? 질문 하나하고 퇴학(=정학이 아니라)을 당했고, 우리도 (해봐)? 한마디 하고는 백지 신문 돌리기에 바빴다.

위치 차이가 확연한 二元的 視覺이 틀림없이 존재하던 그 시절에 어찌 할 바를 모르던 우리는, 우리는 그저 GOGO 스텝의 그 화려한 몸 놀림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나마 토막난 시간을 틈내어 사랑을 나누기에 바빴다.

대성리는 우리의 해방동이었고, 강촌은 우리들 꿈의 낙서판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에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우리가 배운 것은 이 소비자를 끔찍하게 위하는 그래서 지상 최대의 소비자 왕국을 꿈꾸는 편협적 당위성에 자신도 모르게 편승하는 방법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면서, 겪으면서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배운 이 소비자지향의 정책을 두고 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종 편법성 정책에 친히 몸을 올리게 되었으니 오호, 선배에게 일을 잘 배워야 하는데......

경험이 가장 좋은 선배라 듣고, 보고, 배운 것이 소비자 지향의 확고하고 친절한 정책 뿐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끼리끼리 뭉치기 시작했고, 누가 거들지 않아도 끼리끼리 잘들 놀았다.

모피아니, 해피아니, 관피아니......배운 것이 그것이라, 이런 끼리끼리 뭉침이 진정한 (그들만의) 소비자를 위함이라는 명백한 이론에 몸을 내던지는 것은 당연지사....

배우고 본 것이 그것인데, 그래서 그대로 한 것 뿐인데,

굳이......굳이 말이다......이를 굳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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