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친 러시아 반군 지역인 도네츠크 중심가에서 사람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독립을 축하하고 있다.
[정재원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의 공화국 독립을 승인했다.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이 지역에 러시아군도 파병하기로 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위한 서막이 올랐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로 구성된 돈바스는 주민 300만 명 규모의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러시아 접경 지역으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약 8년간 독립을 주장해왔다.
 
분리주의자들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돈바스 지방 정부와 사회기반시설을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이후 정부군과 분리주의 세력 간 교전이 이어지면서 1만5,000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 역시 돈바스를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닌 독립 지역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분리주의 세력 간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재정적·인도적 지원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정 및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백신까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민 최소 80만 명에게 러시아 여권도 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분리주의 공화국 독립을 승인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을 배치할 명분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서방의 침공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계획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돈바스를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닌 독립 지역으로 인정하면서, 이 지역에 군을 파병하는 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니라는 구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러시아는 앞서 2008년에도 조지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 조지아 분리 지역 독립을 승인하고 막대한 재정 지원과 러시아 시민권을 제공한 바 있으며, 당시에도 수천명 규모 병력을 해당 지역에 배치했었다.
 
푸틴 대통령의 독립 인정에 따라 민스크 협정은 사실상 파기됐으며, 서방은 민스크 협정 위반을 지적하며 즉각 반발에 나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을 더욱 훼손하고,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규탄했다. 민스크 협정 위반도 지적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분리독립 승인 결정을 강력 규탄했다. 블링컨 장관은 "민스크 협정을 완전히 거부한 것으로, 러시아가 주장하는 외교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푸틴 대통령의 노골적인 국제법 무시"라고 비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시간 22일 오전 11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장-피에르 라크루아 유엔 평화활동국 사무차장은 "최근 우크라 동부서 3331건 휴전 위반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는 왜 분쟁의 중심이 됐나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비상 안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의 중심지다.
 
이 지역은 블라다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 등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자신들도 독립을 하겠다며 DPR 및 LPR 수립을 선포한 바 있다.
 
DPR과 LPR은 2014년 독립 선포 이후 8년째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 독립 투쟁을 해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승인으로 민스크 협정은 파기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DPR와 LPR 독립 승인은 푸틴 대통령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는 구실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네츠크·루한스크에서 무슨 일 벌어지나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돈바스는 우크라아나 정부군이 장악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그리고 친러 반군이 지배하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로 나뉘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은 2014년 내전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와 단절된 상태였으며 푸틴은 21일 이곳의 분리 독립을 승인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는 각각 230만 명과 15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다수는 러시아 국적이거나 러시아 혈통의 주민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양측의 교전으로 현재까지 1만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돈바스 지역은 폭력과 분열, 경기침체를 겪었으며 내전이 격화하면서 200만 명 이상이 피난을 떠났다.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벌어진 포격전은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신호를 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 15만 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민스크 협정은 무엇인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적 연결고리는 9세기부터 시작됐으며 푸틴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역사적 유산'을 언급했다.
 
2014년 대규모 반(反) 정부 시위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침공한 뒤 병합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들은 이를 불법 행위로 간주했다. 친러 분리주의자들은 이후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동쪽 산업 지역을 장악한 후 DPR와 LPR 수립을 선포했다.
 
위기가 고조된 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반군에 병력과 무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러시아는 전사들이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2015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민스크 협정에 합의했다.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자 간 내전을 멈추기 위해 2015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체결한 종전 협정으로 프랑스와 독일이 중재했다. 이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국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대가로 두 지역에 특별한 지위와 자치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정부군과 반군 간 충돌이 이어지면서 민스크 협정은 상징성을 잃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합의 사항을 이행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련의 군사적 손실 이후 이 협정에 대한 수정을 요구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수렴하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대외정책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협정 이행을 촉구하며 모든 당사국들이 합의한 내용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시아는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80만 명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관리들은 러시아가 분리주의자들을 무장시키고 지원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푸틴 돈바스에서 무엇을 노리나 
 
2001년 작성한 통계를 보면 크림반도와 도네츠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절반 이상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인식했다. 분리주의 반군은 돈바스의 독특한 정체성을 이용해 키예프에 대한 반란을 부채질했다. 러시아 역시 주민들에게 여권을 발급하면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는 논리를 세웠다.
 
2021년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장악한 돈바스 지역에 사는 다수의 주민들은 분리주의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절반 이상은 자치권과 관계없이 지역이 러시아에 귀속되길 바라고 있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지난주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독립국가로 승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은 반대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결국 이를 승인했다.
 
러시아는 또 우크라이나를 소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1949년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완충 지대로 보고 있다. 푸틴은 나토의동진을 용인할 수 없다고 경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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