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덕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교수/ 전 육군본부 문화과장
지난 3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윤 일병 사건발생에 대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설상가상으로 해병대에서는 변기를 입으로 핥게 했던 반문명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해 국민적 분노를 더하고 있다.

대체 군대 인권사고의 끝은 어디인가? 평생 군에서 정신, 문화, 가치, 인성, 인권 등 소프트파워 강화를 위해 노력해 온 필자로서 기가 막히고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윤 일병 사망은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고이다. 그에게 구타, 가혹행위, 언어폭력, 협박, 집단 따돌림, 성추행, 위력 등 거의 모든 인권침해가 동원되고 그 수준도 야만적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지금 국방부는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6일에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키워드는 병영문화혁신이다. 그동안 군은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병영문화 혁신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2005년 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 병영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전 임 병장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에 또다시 병영문화 혁신의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군은 혁신의 방향을 잘 못 짚고 있다.

이번 윤 일병 사고는 인권침해 관점에서 봐야한다. 국민도 군의 인권실책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관점은 문화가 아니라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보고 해결을 위한 타깃을 올바르게 선정해야 한다. 병영문화는 그 다음에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차분히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그 이유는 병영에 인권법치문화가 날카롭게 서 있고 강력하게 실천된다면 여타 군대문화는 빠른 시간에 인간중심의 친인권적인 문화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인권에 대한 장병의 무지와 제도적 적폐 현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가해 병사들은 인권의식이 없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인권침해를 했을 경우 자신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잘 몰랐고 죄책감마저 느끼지도 못했다.

간부 역시 부하들이 사각지대에서 처해진 인권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설사 알더라도 문제가 될까봐 덮으려고 했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군 수뇌부도 인권의 가치와 파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2006년 군은 인권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인권문제를 전투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보고 인권을 터부시해 온 군내 정서를 극복하면서 인권조직을 신설하고 법규를 정비하는 한편 인권친화적인 병영문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적어도 해군 출신의 윤장관은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적절하게 융합한 스마트파워의 가치를 인정했던 리더십이었다. 이 당시에 추진했던 군의 인권업무는 가장 활발했고 상대적으로 인권침해 사고도 크게 줄었다는 게 당시 국방관계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이후 인권 등 소프트파워는 분야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윤장관의 뒤를 이은 한 장관은 정신적인 영역을 애써 폄훼하며 강한 훈련을 통한 전투전사육성만 일관되게 강조했다. 인권, 정신전력, 문화, 신앙전력, 심리적 안정 등 정신적 영역의 업무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조직과 예산이 축소되었고 심지어 비전문가를 조직의 책임자로 앉혔다.

당시 군인들은 군의 소프트파워는 이때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후에 부임한 2명의 장관들 역시 인권 등 정신전력에 대한 무관심은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존중과 배려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병사 상호간에 경어사용 운동을 폈던 한 군단장은 군 수뇌부로부터 쓴 소리를 자주 들어야만 했다.

군은 이제 막 출발한 병영문화 혁신전략의 맨 앞에 인권문제를 설정하고 그 다음에 병영문화를 추진하는 2단계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인권침해인데 다양하고 폭넓은 영역인 문화에 집중한다면 변죽만 울리는 격이 되고 본질은 희석이 될 우려가 있다.

1단계 전략은 군의 인권을 전면적으로 긴급 진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인권정책과 제도, 인권감수성교육, 장병 인권실태, 인권조직의 역량 등을 혁신위원회에서 진단해야 한다. 몇 번 시도했다 좌절된 '군인인권법'도 조속하게 제정해야 한다. 이미 국회의원 중에서도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제복 입은 국민인 군인은 헌법에 의해 국민과 같은 수준의 권리를 누려야 하고 그 권리는 군인사법 등 하위 법률이 아니라 최상위의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인인권법'에 기초해 '군인인권매뉴얼' 마련도 시급하다.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인권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면서 모든 장병들이 이 매뉴얼을 숙지하고 지키도록 해야 한다.

절대적인 예산부족으로 미진했던 인권감수성향상교육도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정규필수교육으로 반영해 반복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제 장관의 지시에 의해 전군에 특별인권교육이 이루어졌지만 생명과 관계되는 인권교육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벼락치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대 최초의 교육이 되어야 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전군에 적용할 인권평가지표를 개발해 정기적으로 인권실태를 진단하고 개선해 나가는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러한 조치는 지금부터 금년 말까지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2단계 전략은 인권친화적인 병영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가치인정, 비차별은 인권의 3대 가치이다. 따라서 인권친화적인 병영조성의 맨 앞에는 생명존중이라는 인권정신이 서 있어야 하고 그 뒤에 존중, 배려, 소통, 안정, 조화, 환경조성, 자기개발이 수반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다 군이 직면한 인권문제들을 내부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국가 인권기관, 사회, 학교, 부모와 네트워크를 적극 구축해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선진적인 노력도 필수적이다. 군은 충격적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강군이 되기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것은 인권의 선진화 없이는 군이 그토록 소망하는 강군육성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수치심과 육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폭력은 이제 사라져야한다"고 말한 국방장관의 의지가 초지일관 임기 내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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