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속인 심진송
말문 터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신병’재발

입이 굳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던 심진송은 참다못해 스스로 ‘굿풀이’를 했다.

“촛불을 켜 놓고 종이에다 부적같은 것을 그려서 벽에 붙였습니다. 그런 다음 거기다 대고 큰 절을 올렸더니 가까스로 입가의 근육이 풀리고 말이 터지더라구요.”

한동안 잠잠했던 심진송의 ‘신병’은 말문이 터지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집 사람은 신할머니가 밖에 와 있으니 나가봐야겠다는 등 자주 횡설수설했습니다. 어떨 땐 마술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 사람이 색연필을 사다달라고 합디다. 웬 색연필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이유는 말하지 않고 안 사오면 큰일난다고 어린애처럼 보채기만 했습니다. 또 발작이 시작되나보다 하고 대수롭잖게 여기고 색연필을 사오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집 사람은 짜증을 심하게 부렸습니다.

다음 날 집 사람은 바깥에 나가더니 어디서 구했는지 색연필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리곤 큰 종이를 꺼내 요상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집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가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등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하루 종일 색연필을 붙들고 지내더군요. 그 날 그린 것은 그림이라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글씨도 아니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기이한 행각을 직접 목격했던 남편은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동네에선 이미 심진송이 신들려 미쳤다는 소문이 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심진송은 사흘이 멀다하고 아팠다. 손수건으로 머리를 불끈 싸매고 자리에 누워 있어도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하루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 정신 감정을 받게 하든지, 요양소에 입원시키든지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지하실 셋방에서 살던 처지여서 요양원같은 곳에 보낸다는 것은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 너무 사치스런 생각이었다.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렇게 고통을 받는단 말인가.”

심진송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이웃서 돈 빌려 신내림굿 정식무당 입문

심진송의 증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무슨 방도를 취하지 않으면 큰일 날 지경이었다.

88년 음력 11월 15일. 그 날도 심진송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녀의 거친 신음소리는 바깥까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다 못한 이웃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방문을 열었다. 심진송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헝크러진 머리카락은 볼썽사나웠다.

“아니 세상에….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있었어 그래?”

이웃집 여자는 형편없는 심진송의 몰골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이럴 땐 차라리 신을 받아야 되는데, 신을 받아야 살지, 그렇지 않음 어디 견뎌내겠어?”

이웃집 여자는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아이구, 신 내림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지요.”

심진송은 간신히 윗몸을 일으켜 앉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깟 돈이 대수요? 우선 사람부터 살고 봐야지.”

이웃집 여자는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어디 가서 신내림 굿을 받아보자고 권했다.

그 말을 듣고 심진송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집을 나섰다. 다급한 그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 무조건 내림굿을 부탁했다.

신내림 굿이란 가급적이면 영험다다고 이름난 무당을 찾아가 제대로 격식을 갖춰 치르는 게 정석이지만, 심진송의 경우는 상황이 워낙 다급하고 여건이 좋지 않아 이것 것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은 내게 신까지 절정에 달했던 날이었습니다. 몸은 꼬일 듯 쑤셔오지, 급하니깐 말문이 터져 나도 모르는 소리를 쉬지 않고 지껄여대지…. 정신없이 점집을 찾아가 신내림 굿을 받고 났더니 비로소 몸이 풀리고 마음이 안정되더라구요.”

어쨌든 그 날로 정식 무당이 된 심진송의 행동거지는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집 밖으로 나 다니면서 아무나 붙잡고 이것저것 지껄이던 버릇도 말끔히 고쳐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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