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여! 위대한 사막이여!

그대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으리.

 

▲ 유중원 변호사
모로코의 붉은 도시인 마라케시에서 밀입국한 옆집 여자, 엘 만수라(El Mannsula)는 해가 질 무렵이면 집을 나섰다.

그녀는 일찍부터 체류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구 항구의 벨주 부두 쪽 오페라 극장 부근에 있는 고급 술집에서 일했다. 그 도시는 아프리카에서 온 젊은 여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지만,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사막의 모진 햇빛과 사나운 바람에 단련된 불의 꽃 부겐빌레아를 닮아서일까. 그러나 그녀가 단지 쾌활하다는 이유만으로 경박한 여자라고 지레 짐작할 것은 아니다.

그녀는 큰 키에 피부는 초콜릿 색깔이었지만 매끄러웠고, 가슴은 남자처럼 납작하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윤이 나서 번지르르 빛났고, 완벽한 모양의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를 입술 사이에 지그시 물고 연기를 멋있게 내뱉을 줄 알았다. 때때로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그려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그녀는 혀를 능수능란하게 굴려서 프랑스어를 정확하게 발음하였다. 그녀의 프랑스어에는 베르베르어 악센트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그녀와 떠돌이 개들이 그의 친구였다. 불법이민 초기 불면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만수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언젠가 그가 살기 싫어서 자신의 손목을 살균한 면도칼로 깊게 그었을 때 그를 구원해 준 것도 만수라였다. 그 상처 자국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초기 이민자 생활에서 그나마 가족처럼 돌봐주었던 만수라가 없었다면 그의 프랑스 생활은 더욱 비참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세월이 상당히 흘러 지나가도 여전히 심각한 트라우마 때문에 밤이면 계속 나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알코올 중독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사막에서 일어났던 그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이 준 깊은 내상은 어느새 그의 남성 기능마저 일시 마비시켜 버렸다.

처음에는, 마르세유에 막 도착했을 때, 이브라함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서 있는 외곽 산기슭 너머에서 주로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서 아프리카의 마그립 지역에서 밀입국한 흑인과 아랍인들, 동유럽에서 흘러 들어온 집시들이 집단 거주하는 텐트촌에서 살았다. 그곳 텐트촌 뒤편 화장실로 쓰는 구덩이 주변에는 더러운 휴지조각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곳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 항상 어두컴컴하였고, 늦가을부터 어두워지면 추위를 피하려고 헌 종이와 자잘한 나뭇가지 등 이것저것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밤이 오면, 술에 취한 부랑배들이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를, 어두운 숲속에서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일찍 잠이 든 새들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또는 이들 소리의 화음을 자장가처럼 들으면서 종이 박스를 침대삼아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치안은 엉망이었어. 그곳에서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작은 칼 정도는 지니고 다녀야 했지. 거지, 부랑자, 집시, 알코올 중독자, 동성애자(그들은 ‘계집은 좋지 않아, 사내놈이 내 취향에 맞아!’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성도착증 환자, 절도범, 그리고 에스데에프SDF들, 노숙자들 말이야, 늘 싸구려 술에 절어 있었고, 걸핏하면 서로 시비를 걸어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치고받거나, 칼부림을 하면서 싸웠지. 아침에 일어나면 멀쩡한 사람이 칼에 찔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기도 하였으니까. 그렇지만, 어디 호소할 데가 없었지. 모두 불법체류자였으니까, 법적으로는 없는 존재인 거지. 잡히면 즉시 외국인 집단수용소로 끌려가서 추방됐어.

나 역시 마찬가지 신세였지.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지. 어느 날 갑자기 억센 손아귀가 내 멱살을 틀어쥐고, “여긴 사막이 아니야, 네가 있을 곳이 아니란 말이야. 네가 도망쳐왔던 곳으로 돌아가. 어서 빨리 가란 말이야.”라고 으르렁거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거지…….

그런데 그곳에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 가혹한 노동과 두려움, 편견과 무지, 편협함과 배타성 등 나쁜 것만 존재하는 곳이야……. 거의 매일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하여 나무가 짙게 우거진 숲속 뒤편 이곳저곳으로 자주 자리를 옮겨야 했어……. 참으로 고달픈 생활이었지. 엿 같은 세월이었어…….

내가 말이야…… 밀입국자나 이주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주로 투숙하는 여관, 이프 섬 선착장 뒤쪽 구석진 골목에 숨어있는 싸구려 여관에서 청소부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그나마 사정이 풀리기 시작한 거야. 거기에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파벌이…… 코모로파, 모로코파, 튀니지파, 알제리파 등등이 있었는데, 그때 알제리파의 선배가 그 자리를 내게 물려준 거야……. 우린, 아주 싸고 맛있는 양고기 요리와 값싼 알제리 포도주를 살 수 있는 알제리 식당에서 가끔 어울렸어.

난 체류허가증이나 노동허가증이 없었기 때문에…… 정상 임금의 반밖에 받지 못하였지만 그걸 따질 필요는 없었지. 그때부터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 수 있게 되었거든……. 그래도…… 추방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야.”

그 판잣집은 홈이 패인 함석이나 나무판자를 벽으로 하고, 천장에는 양철이나 방수용 타르 종이를 돌로 고정시킨 것이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양철 지붕은 요란스럽게 소리쳤고, 판잣집은 곧 무너질 것처럼 심하게 동요하였다. 비가 올 때면 거센 빗줄기가 양철 지붕을 두들겨 패면서 집안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그럴 때면 집으로 가는 완만하게 경사진 진흙탕 길에는 빗물이 넘쳐 질척거렸다. 그래도 판잣집의 그 한 뼘만큼 비좁은 방 한 칸이 그의 안식처였다. 밤이면 전깃불이 들어와 방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런데 만수라와 이브라함이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해 여름은 짧았다. 9월 중순경인데도 벌써 날씨가 서늘했다. 초가을의 느긋한 주말 오후였다. 햇볕이 따사롭다. 오페라 극장 뒤쪽 노천카페에서 칠흑처럼 검고 진하고 쓰디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때, 만수라는 그를 외면한 채로 건물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바다 쪽을 무연히 바라보면서 우물쭈물 이야기 하였다.

“내겐, 프랑스인 여자 친구가 있어. 난 여자만을 사귀지. 남자들한테는 결코 끌리지 않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도 곧 바뀔 거야. 나는 항상 새로운 사람과 있어야만 행복을 느끼지. 난…… 더 좋은 파트너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바꿔버리지.”

그는 그때 어떤 말로도 대꾸하지 않았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지금쯤은 잔잔하리라.

그녀는 얼마 후 새 연인을 따라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새 연인은 지독한 변태성욕자였던 부유한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상당한 목돈을 위자료로 받았다. 그녀는 그 돈으로 그 도시 외곽에 있는 하이네켄 체험전시관 부근에서 운하를 오고 가는 유람선의 손님을 상대로 감자튀김과 청어 요리를 하이네켄 맥주 또는 포도주와 곁들이는 식사를 제공하는 작은 식당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원래 마르세유에서 카페를 경영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한 후에도 그 지긋지긋한 전 남편과는 무조건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단지 남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그 이름은 그녀에게 고통이나 모욕감보다 더 참담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뇌까렸다. “이 도시를 하루빨리 도망쳐야 돼. 그 자식과 관련된 기억을, 그래 모든 것을 깡그리 지워버려야 하니까.”

만수라는 이번만큼은 상당한 기간 떨어지지 않고 살기로 결심하였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양성애자인 그녀는 통통한 편이었고, 남자처럼 강인한 인상을 풍겼지만 마음씨가 착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애인이 되어주는 대신 그 식당을 공동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그 수입의 반을 주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만수라가 연인과 함께 소매치기, 집시나 흑인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생 샤를 역에서 테제베 기차를 타고 떠나던 날, 이브라함은 누나 같고, 어머니 같았던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고, 자신도 그 멋진 기차를 타고 북쪽 나라로 함께 떠나고 싶은 갈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만수라가 그를 위로하였다.

“넌 영리하고 착한 사람이야. 난 절대로 널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얼마간 돈을 모으면 곧 사막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넌 사막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지. 사막에서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거든……. 사막 사람들은 사막에서 살아야 하고, 사막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 우리의 영혼은 오직 사막에서만 평온하게 머물 수 있는 거야. 콘크리트 상자에서는 그 영혼은 말라 죽게 되지. 나도 언젠가는 사막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그녀는 메디나(구도시)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로, 사람들이 사는 그 정겨운 골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울림인 것처럼 둥둥둥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잦아들 듯 또는 빠르고 급하게 퍼지는, 환청처럼 아련하면서도 저릿하게 밀려와 육체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심장박동을 팽팽하게 당기는 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1897년 2월, ‘사막의 술탄’이라고 불리던 성도 스마라의 족장인 마 엘 아이닌이 모로코를 점령한 프랑스 침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사막의 전사들을 이끌고 행진했던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작은 침팬지는 50도를 넘나드는 열기 속에서 주인의 신호에 따라 민첩하게 공중제비를 돌고, 이가 빠져버린 늙은 독사는 피리소리에 맞춰 머리를 흔들며 묘기를 부리고, 붉은색 옷에 무슨 쇠붙이를 주렁주렁 매단 물장수 게랍, 길가의 이발사, 끊임없이 허공에 나팔을 불어대는 곡예사, 붉은색 푸른색 원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 자신의 운명은 모르면서 남의 운명은 잘도 알아맞히는 점쟁이, 주술사, 돌팔이 치과의사, 시커멓게 탄 뱀과 원숭이 등을 파는 음식점, 온갖 종류의 향신료가 가득한 가게, 썩어가는 생선들을 늘어놓은 가판점들, 마리화나 아니면 하시시를 공공연히 파는 뚜쟁이들을, 그녀가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험난한 세상에 행운이 있어야 할 거야. 너를 위해 매일 밤마다 기도해줄게. 사막에서 행복하게 아주 오래 살 수 있도록 말이지. 그리고…… 나를 기다려줘. 난, 반드시 돌아갈 거야. 난 사막에서 이브라함과 함께 하는 게 꿈이거든.”

그는 목이 메어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쉽사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짧은 순간 그의 온몸에서 참을 수 없는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기차에 오르기 직전 상당한 금액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 기차는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 북쪽으로 가는 테제베 기차는 부드럽게 플랫폼을 미끄러져 나갔다. 그는 기차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만수라가 여전히 창가에 보였다. 그녀가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 창문이 지나갔고, 나머지 창문도 모두 지나갔다. 기차는 멀어져갔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반대편 선로에는 다른 기차가 미끄러지듯 서서히 도착하고 있었다.

3번 플랫폼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기차가 2시 정각에 출발한 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초겨울이어서 비는 멎었지만 여전히 축축하고 추운 날씨였다. 얼마 전에 삐었던 오른쪽 발목이 몹시 욱신거리기 시작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였고, 누나였고, 사랑하는 연인이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녀가 황량한 도시의 한 구석에 그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 무렵에 이브라함은 가슴에다 문신을 새겼다. 단골로 다니던 그 술집에서 만난 건장한 체격의 선원들 가슴이나 팔뚝에 새겨진 신기한 문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 친구인 하딤은 말렸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바늘이 너무 더러워서, 나쁜 병을 옮길 수도 있어. 녹슨 바늘로 찌르면 피부가 금방 곪아 터질 지도 몰라. 게다가 돈을 터무니없이 많이 달라고 할 거야. 문신은 선원들이나 하는 짓이지. 다시 생각해보렴.”

“난, 중요한 것들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지만…… 팔뚝이나 아니면 가슴팍에 새기고 싶은 거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니까.”

“그게 무언대?”

“음…… 투아레그와 마르세유. 그리고 이브라함과 만수라이지. 그들이 내 인생의 전부이거든.”

“넌, 만수라가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난 기다려야 해. 유일한 꿈이니까.”

돌팔이 문신 시술자의 검은 잉크를 적신 바늘 끝이 촘촘하게 그의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파내기 시작했고 피가 흐른다. 그는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몇 시간 뒤 팔뚝에 고딕체의 글씨가 나타났다. 오른팔 팔뚝에는 Marseille, Tuareg가 왼팔 팔뚝에는 EL Mannsula, Ibraham. 그 글씨들은 그의 심장에 새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막으로 돌아가더라도 마르세유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수라를 기다릴 것이다. 끝없이 기다릴 것이다.

 

기약 없이 다시 하루가 흘러 지나가자 이제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브라함이 두 눈을 감고 꼼짝없이 드러누워 있다. 그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목에서 갑자기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고통스럽게 숨을 내뱉는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연신 입 속에서 무어라고 웅얼거렸다. 동생인지, 아버지인지, 만수라인지, 누구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모래 위에 누워있는 이브라함의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브라함은 해체되어 사막과 완벽하게 합일되어 있었다. 그때, 사막의 지니가 부드러우면서도 찰거머리 같은 손길로, 운명의 손길로 이브라함을, 그의 얼굴과 온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이브라함이 죽었다.

그는 사막의 침묵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며칠 전 의식이 또렷하였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어. 우리, 서로에게 빚진 것은 없는 것으로 하지. 남쪽 길로 직진하자고 먼저 우긴 것은 당신이고, 그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것은 나니까……. 우리들의 이야기는 사하라의 남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거지.” 나는 이브라함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도대체 말할 힘이 없었다.

이브라함이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나자 굳어진 손은 차가웠고,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면서 눈처럼 희어졌다. 너무나 순수한 백색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한없이 평온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는, 표현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는 풍부한 의미와 함께 침묵이 담겨 있다. 작별의 인사. 체념 또는 단념.

그때 이브라함의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 허공을 맴돌다 곧 먼 길을 떠나려고 출발하였다. 그는 마침내 환상에서 깨어났고, 모든 두려움이, 희망과 절망 같은 것도 멀리 사라졌다. 그 영혼은 달콤한 무감각 상태에서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공空이 되고, 무無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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