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속인 심진송
서산대사 혼령 꾸지람 듣고 ‘표충사’행 결심

심진송은 왜 사명대사가 꿈속에까지 나타났을까 궁금했으나, 갑작스럽게 밀양 표충사로 내려가 볼 형편이 못돼 차일피일 미뤘다. 그녀는 아무나 붙잡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험한 생각들을 마구 뱉어냈던 예전의 심진송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시는 사명대사신과 동자신이 예시해 주는 것들을 차분하게 점을 보러 오는 손님들에게 전해 주었다. 예컨대 심진송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가는, 혼령과의 텔레파시를 통해 신통한 점괘를 얻어낸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의 점을 봐주느라 바쁘게 지내던 중, 그녀는 남편과 함께 모처럼 남편의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내려가는 기회를 맞았다. 초행인 남도 길은 멀고 멀었다. 나주들판을 지나 영암 땅에 이르자 명산인 월출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월출산은 높이가 1천m도 채 안됐지만, 왠지 기품이 있어 보였어요. 영암에서 일을 본 다음 내친 김에 해남가지 구경하고 올라오기로 했어요."

"해남 두륜산에 있는 큰 가람인 대흥사를 찾을 때였습니다. 사찰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왠지 몸이 으실으실 떨렸어요, 그날따라 부슬부슬 내렸던 비 탓은 아니었어요. 알고 봤더니 대흥사는 다도(茶道)의 본산일 뿐 아니라 서산대사님과도 인연이 깊은 절이더군요,"

"서산대사님이 누굽니까, 사명대사 할아버지의 스승 아니십니까. 절 앞뜰에 들어서는데 서산대상의 혼령이 나타나 ‘너 왜 표충사엔 가지 않고 여길 찾아 왔느냐’고 꾸짖으시더니, ‘밀양에 다녀오면 더 영험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텐데...’하며 먼 산을 쳐다보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자 이유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한참동안 나는 대웅전 쪽을 보면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비 내리는 대흥사를 돌아보고 나온 심진송은 그 길로 밀양 표충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전남 해남에서 경남 밀양이 오죽 멉니까. 시외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간신히 밀양 천황산 기슭에 있는 표충사에 다다랐습니다.”

사명대사 정기 받은 후 ‘신령세계’더 맑아져

밀양에서도 표충사는 한참 멀었다. 1천m가 넘는 험준한 산들이 즐비해 이른바 ‘영남 알프스’로 통하는 산록에 위치한 표충사는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고찰이었다.

신진송은 표충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강한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분명 처음 와 보는 곳인데도 왠지 친근한 느낌도 들었다. 울창한 송림을 병풍처럼 두른 산사에는 국보인 청동함 은향완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3층 석탑과 석등 등이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보다 먼저 사명대사 유품전시관부터 찾았다.

“사명대사 할아버지의 유품을 직접 눈으로 봤더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고향 집에 들러 옛날 사진들을 꺼내 보는 것처럼 흐뭇했어요. 그 때 사명대사 할아버지도 내가 찾아간 것이 즐거웠던지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힘쓰라’고 일러주시더군요.”

심진송은 그 곳에 이틀을 머물면서 재약산에 올라가 산제(山祭)를 올렸다. 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층층폭포 앞에다 약식으로나마 상을 차린 다음 그녀는 정성을 다해 기도를 했던 것이다.

“밀양 표충사에서 사명대사의 정기를 받은 탓인지, 그 곳을 다녀온 뒤부터 ‘신령(神靈)세계’가 훨씬 더 맑아진 것 같았습니다. 신령님들의 예시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전보다 커졌습니다.”

그 후 심진송은 무속인들의 모임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에 가입해 해마다 벌이는 ‘나라굿’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워낙 다급하게 신내림을 받았던 터여서 나는 다른 무속인들처럼 이름 난 ‘신엄마’를 두지 못했어요. 그래서 점집 개업 초기엔 모든 게 다 힘들었어요. 딱히 의논할만한데도 없어서 혼자서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심진송은 특히 굿하는 것에 대해 서툴렀다고 말했다. 음식상을 차리는 것도 잘 몰랐고, 굿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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