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사업종료·전직원 정리해고' 푸르밀 서울 문래동 본사 가보니
직원들 "사측, 상의 한마디 없이 통보할 줄 생각도 못해" 울분
노조도 강력 반발...경영진에 책임론 제기, "철회해 달라" 내용증명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푸르밀 본사의 모습.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푸르밀 본사의 모습.

[정재원 기자] "30년 근무한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55살에 어디로 이직할 수 있겠습니까.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푸르밀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A씨(55·남)는 사측의 '11월 사업 종료' 발표 이튿날인 18일 울분을 토했다. 

 '범롯데가' 유업체 푸르밀은 전날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11월 30일 사업 종료 계획과 400여 명의 전직원 정리 해고를 통지했다. 퇴직금 이외의 보상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푸르밀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신준호 전 회장의 차남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뒤 2018년부터 적자에 시달려왔다. 

2018년 15억 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19년 88억 원, 2020년 113억 원, 2021년 123억 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매각이 무산되면서 극심한 경영난에 아예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A씨는 "길바닥에 나앉으란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자녀들이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공부시킬지 너무 막막하다"고 한숨 쉬었다.

A씨 뿐 아니라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푸르밀 본사 주변에서 기자가 만난 푸르밀 직원들은 날벼락 같은 해고 통보에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동료들과 휴게 시간을 갖기 위해 정문 밖으로 나오는 직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정리 해고와 관련한 심경을 묻자 몇몇 직원은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자리를 피했고, 어떤 직원들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취재에 응한 몇몇 직원들은 하나같이 "너무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아 어안이 벙벙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입사한 지 1년 가량 됐다는 B씨(30대 초반·남)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회사가 이렇게 되니 당황스럽다"며 "또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을 하면 착잡하고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유업계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 좋지만 면접 때라도 알려줬다면 입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음 달 결혼을 앞둔 동료도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덧붙였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입사 9년차 C씨(35·남)는 "어제 회사 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고 너무 놀랐다"며 "회사 전체가 술렁이는 분위기였다"고 전날 상황을 전했다. 

C씨에 따르면 전날 점심시간 이후 사측에서 해고 통보 메일이 오자 많은 직원들이 '패닉'에 빠졌고, 외근을 나갔던 직원들은 내부로 다급히 전화를 걸어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묻기 바빴다. 이후 언론에 사실이 보도되자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해 정신을 못차릴 정도 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원들은 회사가 매각되는 쪽으로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렇게 한 순간에 해고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C씨는 "집에 가니 아내가 말없이 안아서 위로해줬다"며 "그간 쌓은 경력도 있고 하니 같은 업계 쪽으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사 관리직으로 근무하는 D씨(38·남)는 "17일 오후 1시 40분께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사실 지난 주에 회사가 사업을 접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상의 한마디 없이 통보를 날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D씨에 따르면 지난주 관리부서에서 거래처 등에 오는 11월25일부터 제품 생산을 중단할 것이란 메일을 발송하면서, 본사 내부에서는 사업 정리설이 돌았다.  

그러나 D씨는 "해고 통보 이전에 사측에서 직원들에게 보상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의 한마디 없이 통보라니 매우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측의 통보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답답해 했다. 푸르밀 본사에는 노조가 없고, 생산 공장 직원들로 구성된 공장 노조만 있기 때문에 공장 노조 추이를 지켜보고 따라야 되는 상황이라는 게 D씨 설명이다.

D씨는 "직원들은 사업 철수가 아니라 매각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LG생활건강 등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두 차례 무산 됐다"며 "저출산 등으로 유업계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신제품을 계속 개발하고 사업 다각화 등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적 부진에는 경영진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온다. 푸르밀 노조는 사업 종료 결정을 철회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 증명을 사측에 보내고, 법적 대응을 위한 검토에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유업계에서는 "남일 같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푸르밀의 사업 철수가 '상징성' 있는 변곡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출산율 저하 등으로 우유 사업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업 다각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우유 뿐 아니라 매일유업·남양유업 등 유업체들은 우유 외에 다른 신사업 추진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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